포스텍(POSTECH)은 이병주 신소재공학과 교수, 오상호 박사 연구팀이 새로운 금속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수없이 실험해야 하는 과정을 컴퓨터로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을 개발했다고 8일 밝혔다.
액체 상태인 금속이 굳는 과정에서 내부에는 결정립과 미세조직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응고 과정 중 형성된 미세조직은 제품의 강도와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주조 공정은 물론, 금속 분말을 레이저로 녹였다가 빠르게 굳히는 3D 프린팅 공정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3D 프린팅은 복잡한 열 이력에 따라 미세조직이 어떻게 변하는지 예측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혀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널리 사용된 '상장(Phase-field)' 모델 같은 정밀 시뮬레이션은 계산량이 매우 많다는 한계가 있었다. 수십 마이크로미터(㎛) 크기 영역을 분석하는 데 고성능 컴퓨터로도 수백 시간이 필요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팀은 통계역학을 기반으로 한 '몬테카를로 포츠' 모델에 주목했다. 금속 내부 결정립 성장 과정을 계산하는 데 사용되는 이 모델은 알고리즘이 간단해 계산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응고 현상까지는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 모델에 실제 물리적 단위를 연결하는 방법과 응고 역학 이론을 접목해, 금속이 굳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동시에 계산하는 모델을 구현했다. 여기에는 결정립이 자라는 과정과 새 결정이 생겨나는 과정, 기존 결정 방향을 따라 이어 자라는 현상까지 포함된다.
이를 통해 응고 속도와 미세조직을 정확하게 재현했으며, 기존에는 계산이 어려웠던 수십 밀리미터(㎜) 규모의 실제 제조 공정도 일반 데스크탑 수준의 컴퓨터로 수십 시간 안에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모델은 정밀 시뮬레이션 방식 한계를 뛰어넘는 계산 효율성을 보이면서도 응고와 결정립 성장 현상을 하나의 알고리즘 안에서 동시에 다룰 수 있어 '계산 효율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금속 제품을 실제 만들기 전에 컴퓨터에서 여러 공정 조건을 미리 시험해 볼 수 있어 시행착오를 줄이고, 원하는 성능을 갖는 합금과 제조 공정을 더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주조와 용접은 물론, 최근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금속 3D 프린팅 분야에서도 활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이병주 교수는 “적은 계산 비용만으로 금속 제조 공정 설계 단계에서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가이드가 될 것”이라며 “원하는 미세조직과 성능을 얻기 위한 합금 및 공정 설계에도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견연구사업과 선도연구센터(ERC)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이번 연구는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