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경유 수출 제한과 중동 정제설비 차질 여파로 글로벌 석유제품 공급망이 흔들리는 가운데, 국내 정유업계 실적에 청신호가 켜졌다. 윤활유의 원재료인 윤활기유 가격과 스프레드(제품 가격과 원가 차이)가 급등한 영향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아시아 지역 그룹Ⅲ 윤활기유 가격은 연초 대비 큰 폭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원재료 가격 상승에도 완제품 가격이 이를 웃도는 속도로 오르면서 스프레드가 확대되는 공급 부족 장세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유럽 그룹Ⅲ 윤할기유 가격도 미국과 이란 전쟁 발발 전인 2월 말 톤(t)당 약 1200유로에서 지난 6월말 약 3000유로까지 상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가격 강세는 중동 지역 공급 차질 여파로 풀이된다. 카타르 펄 GTL 설비 가동 중단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레이트 등 주요 산유국의 정제 설비가 타격을 입으면서 윤활기유 공급 물량이 급감한 것이다. 업계는 올해 상반기 그룹Ⅲ 윤활기유 생산량은 평년 동기 대비 약 30%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에도 평년 대비 약 12% 수준의 공급 감소를 전망하고 있다.
그룹Ⅲ 윤활기유는 전기차 및 고효율 엔진용 프리미엄 윤활유에 사용돼 고부가 제품에 속한다. 또한 생산의 약 40%를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업계가 담당하고 있어 공급 공백이 발생하더라도 단기간에 대체 생산이 어려워 가격 상승 탄력이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여기에 최근 정유사들이 중간유분 생산 비중을 높이면서 윤활기유 생산 원료인 감압경유 투입이 줄어든 점도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고 있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감압경유는 항공유와 경유 등 중간유분과 대체 생산 관계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공급 차질뿐만 아니라 수익성이 높은 휘발유, 항공유 등 경질 제품 생산이 늘어나면서 윤활기유 시장의 유동성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윤활기유 가격 오름세가 국제유가 흐름과 별개로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제유가가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지만 윤활기유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해서다. 업계에서는 구조적인 공급 부족이 이어지는 만큼, 단기간 내 가격 조정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최근 세계 2위 경유 수출국인 러시아가 경유 수출을 금지하면서 국내 정유사의 공급망 역할도 재조명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8일 자국 내 연료 수급 안정을 이유로 경유 수출을 제한했다. 이에 미국과 유럽 시장의 경유 마진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반등했고, 아시아 시장도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세계 5위 규모의 정제능력을 가진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국내 정유업계는 경유와 항공유를 중심으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고, 복합 정제설비 비중이 높아 수요 변화 대응력도 높은 편이다.
특히 미국과 이란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지속되자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한 국내 정유업계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중국이 석유제품 수출 규제를 일부 완화했지만 역내 공급 부족분을 단기간에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도 우세하다.
다만 정부가 국내 석유제품 수급 안정을 위해 수출 관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가 국제유가와 환율 변동성도 고려해야 하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업계는 중동 정세와 원유 도입선 변화 등을 예의주시하며 수익성과 공급 안정 사이에 균형을 맞춰갈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와 중동 변수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국내 정유사들의 역할과 경쟁력도 한층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소연 기자 so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