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후우울증은 주로 출산한 여성에게 나타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신생아를 맞이한 아버지 역시 적지 않은 비율로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이른바 '부성 산후우울증(Paternal Postnatal Depression)'을 조명하며 출산 후 아버지 역시 심각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산후우울증은 출산을 경험한 여성 7명 중 1명가량에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산 이후 급격한 호르몬 변화와 육아 스트레스가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면서 우울감,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 죄책감, 아이와의 애착 형성 어려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증상이 심해질 경우 자신이나 아기에게 해를 끼치려는 생각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중환자의학 전문의 크리스토퍼 초우칼라스 박사는 시험관 시술 끝에 어렵게 얻은 쌍둥이를 품에 안았지만, 기대했던 행복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허탈감에 빠졌다고 밝혔다.
출산 과정에서 아내가 대량 출혈로 생명을 위협받은 이후 그는 아이들과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했고, 불안과 우울감이 점차 심해졌다. 그는 다시 흡연을 시작했고 음주량도 늘었으며, 일부러 과속 운전을 하는 등 위험한 행동으로 현실을 외면하려 했다고 털어놨다. 이후 가족의 권유를 받아 상담과 치료를 시작한 뒤 상태가 호전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여러 연구에서는 출산 전후 시기에 아버지의 약 10%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남성은 슬픔이나 눈물 대신 짜증, 분노, 공격적인 행동, 과도한 음주, 충동적인 행동 등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우울증으로 인식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일부 연구에서는 남성 역시 아이가 태어난 뒤 호르몬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한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감소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증가하면서 우울증 발생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면 부족과 육아 부담, 경제적 압박, 부부 관계 변화 등이 더해지면 정신건강 악화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특히 배우자가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을 경우 아버지 역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올해 국제 의학 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에 실린 스웨덴 연구에서는 초보 아버지 100만 명 이상을 분석한 결과, 출산 후 1년이 되는 시점에는 우울증과 스트레스 관련 질환 진단 비율이 임신 이전보다 약 30%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실제 치료를 받는 남성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우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적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거나 상담을 미루는 경우가 흔하다고 지적했다.
부성 산후우울증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부모와 아이 사이의 애착 형성을 방해하고, 자녀의 정서 및 행동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되고 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