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세대 조각투자 사업자들의 퇴장은 STO의 성패가 기술이나 기대감이 아니라 제도적 신뢰와 지속가능한 사업 구조에 달려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미술품 조각투자 역시 중요한 사례다. 고가 미술품은 일반 개인투자자가 단독으로 사기 어렵지만, 투자계약증권이나 신탁수익증권 형태로 구조화하면 다수의 투자자가 작은 금액으로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미술품 투자는 특히 보관, 감정, 보험, 매각 절차가 중요하다. 작품의 실재 여부, 진품 여부, 보관 상태, 매각 가능성에 따라 투자자의 권리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향후 토큰증권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에 기록됐는가'보다 '기초자산이 실제로 존재하고 안전하게 관리되는가'다.
여기서 일반 투자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질문이 있다. 토큰증권을 샀다면 실제 그림은 어디에 있는가. 건물은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 한우는 어느 농장에서 누가 관리하는가. 저작권료는 누구 계좌로 들어오는가. 투자자가 산 것은 토큰인데, 실물자산은 어디에 있고 누가 보관하는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하는 STO는 신뢰받기 어렵다. 토큰증권에서 토큰은 권리의 표시이고, 실물자산은 별도의 법적 구조 안에서 보관·관리돼야 한다. 미술품이라면 작품은 전문 수장고나 보관기관에 보관되고, 감정평가와 보험, 관리계약이 붙어야 한다. 부동산이라면 건물은 원래 위치에 그대로 존재하고, 등기나 신탁 구조를 통해 소유와 처분 절차가 관리된다. 저작권처럼 실물이 없는 무형자산이라면 권리자가 누구인지, 저작권료가 어느 계좌로 들어오는지, 사업자가 파산해도 투자자의 청구권이 보호되는지가 핵심이다.
그래서 STO에서 자주 거론되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신탁이다. 신탁은 쉽게 말해 기초자산이나 그 권리를 사업자의 고유재산과 분리해 별도의 법적 구조 안에서 관리하는 방식이다. 사업자가 어려워지더라도 투자자의 권리와 기초자산이 사업자의 도산위험에 함께 노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금융위원회가 2023년 발표한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도 신탁수익증권 발행과 관련해 신탁재산의 객관적 가치평가, 처분 가능성, 국내법 적용, 단일재산 여부, 수탁자의 보고·공시 의무 등을 중요한 요건으로 제시했다.
다만 모든 토큰증권이 자동으로 신탁 구조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자산의 성격에 따라 신탁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펀드·리츠·특수목적회사와 결합한 구조 등 다양한 설계가 가능하다. 신탁수익증권 구조에서는 신탁회사나 수탁자가 기초자산을 신탁재산으로 관리하고, 투자자는 신탁수익권을 갖는다.
투자계약증권 구조에서는 발행사나 사업자가 기초자산을 관리하고, 투자자는 공동사업 결과에 따른 수익청구권을 갖는다. 부동산이나 인프라처럼 규모가 큰 자산은 특수목적회사, 펀드, 리츠와 결합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무엇이든 기초자산의 소유자, 보관 장소, 수탁자, 보험 가입 여부, 감정평가 방식, 처분 절차가 증권신고서, 투자설명서, 약관, 공시자료, 투자자 설명자료 등을 통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다. 토큰증권 시장은 제도 시행 이후 크게 발행, 기록, 유통, 결제의 네 단계로 작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행 단계에서는 어떤 자산을 어떤 구조로 증권화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기록 단계에서는 제도 시행 이후 분산원장이 법적 장부로 활용될 수 있다. 유통 단계에서는 투자자가 보유한 권리를 사고팔 수 있는 제도권 시장이 마련돼야 한다.
결제 단계에서는 증권의 소유권 이전과 대금 지급을 어떤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마무리할지가 핵심 과제가 된다. 이 네 단계가 안정적으로 연결돼야 제도 시행 이후 토큰증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특히 유통시장은 STO 성공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조각투자 상품은 발행은 가능하더라도 투자자가 중간에 빠져나올 수 있는 유통시장이 제한적이었다. 유통시장이 없으면 가격이 제대로 형성되기 어렵고, 투자자는 만기나 매각 시점까지 묶일 수밖에 없다. 토큰증권 제도화 작업은 이러한 비정형 증권의 발행과 유통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