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평화다”…'탐험가 30년' 김현국, 제7차 유라시아 대륙횡단 나선다

김현국 탐험가.
김현국 탐험가.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약 400㎞. 주말이면 자동차로 오가고 고속철도(KTX)로 2시간 남짓이면 닿는,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거리다. 하지만 서울에서 파리까지 이어지는 약 1만4000㎞의 육상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산을 출발해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까지 자기 차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믿기 어렵다는 반응부터 보인다.

김현국 탐험가(58)는 지난 30년 동안 이 길을 직접 확인해 왔다. 1996년 첫 시베리아 횡단 이후 2023년까지 여섯 차례 유라시아를 횡단하며 부산~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모스크바~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네트워크를 기록해 온 '트랜스 유라시아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올해로 꼭 30주년을 맞은 그는 이제 제7차 유라시아 대륙횡단을 준비하고 있다.

2023년 유라시아 대륙횡단 중 러시아 탐험가와 함께 바이칼호수 환경보호 활동을 벌인 김현국 탐험가(오른쪽).
2023년 유라시아 대륙횡단 중 러시아 탐험가와 함께 바이칼호수 환경보호 활동을 벌인 김현국 탐험가(오른쪽).

◇ 30년, 세 시기로 나뉜 기록

김현국 탐험가의 30년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1996년, 모터바이크로 시베리아를 단독 횡단한 시기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42년간 금단의 땅이었던 러시아가 그에게 처음 열린 미지의 세계였다. 대부분의 구간이 비포장이었고 도로 정보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때다. 그는 배낭 하나를 메고 떠난 인도·네팔 여행에서 작은 개천과 대나무 표식만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본 뒤 '국경은 철조망이 지키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흔들렸고, 1995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머물며 극동의 변화를 지켜본 뒤 이듬해 첫 횡단에 나섰다.

두 번째는 2001년부터 2023년까지, 반복된 횡단을 통해 부산~시베리아~암스테르담 1만4000㎞ 도로의 자료를 완성한 시기다. 그가 기록해 온 길은 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의 아시안하이웨이 6호선, UN 유럽경제위원회의 유럽 E30 도로, 러시아연방도로청의 트랜스시베리아 고속도로로 이어진다. 2023년 여섯 번째 횡단에서는 배기량 998㏄의 경형 승용차로 부산~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독일~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약 1만5000㎞를, 귀국까지 포함해 3만㎞ 넘게 달렸다.

특별히 개조하지 않은 양산차로 완주했다는 사실은 이 길이 이제 일부 탐험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준비만 되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여정이 됐음을 보여준다. 이 여정에서 쌓은 네트워크는 2019년 다섯 번째 횡단 중 뉴욕 The Explorers Club의 한국인 최초 정회원이 되는 결실로 이어졌다.

세 번째가 지금 한창 준비중인 제7차 대륙횡단이다. 앞선 두 시기가 '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면, 이번에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과 북의 길이 연결돼야 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하는 여정이다.

바이칼 자연보호구역 센터에서 운영하는 조류연구소를 찾은 김현국 탐험가(왼쪽).
바이칼 자연보호구역 센터에서 운영하는 조류연구소를 찾은 김현국 탐험가(왼쪽).

◇ 제7차 대륙횡단 “뉴욕에서 DMZ까지”

1908년 2월 12일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는 파리를 향한 자동차 경주가 출발했다. 무모하다는 우려 속에서도 자동차는 북미와 시베리아를 거쳐 결국 파리에 도착했다. 120여 년이 지난 오늘, 자동차는 스스로 주행하는 시대를 향하지만 한반도의 길은 여전히 끊겨 있다.

제7차 대륙횡단의 주제는 '길은 평화다! 뉴욕에서 파리까지 그리고 한반도 비무장지대(DMZ)·북동항로'다. 뉴욕 타임스퀘어 43번가에서 출정해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고, 배로 일본을 거쳐 부산에 입항한 뒤 서울~DMZ~동해를 지나 다시 배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간다. 이르쿠츠크·예카테린부르크·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을 지나 파리에 도착하고, 북유럽을 거쳐 무르만스크에서 북동항로(북극해항로)를 통해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온 뒤 DMZ를 거쳐 서울로 귀환한다. 참가대원은 김현국 탐험가와 각계각층에서 모인 구간별 합류자 22명 등 총 23명이다.

독일 분단과 재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토르를 찾은 김현국 탐험가.
독일 분단과 재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토르를 찾은 김현국 탐험가.

눈에 띄는 기획은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소 1001마리, 판문점 육로 통과)을 본뜬 이벤트다.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텄던 이 사건을 모티브로 1001대의 차량이 판문점에 모여 출발·귀환을 환영하는 자리를 기획 중이며, 유튜브·글로벌 OTT와 협업해 '길은 평화다' 메시지를 알릴 계획이다.

준비는 2025년 3월부터 본격화됐다. 올해 1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서한을 전달했고, 러시아 세계청년축제 사무국과도 여러 차례 협의하며 차량 지원을 논의해 왔다. 다만 최근 한국-유럽 방산협력, 러시아·북한 고위급 교류 등 국제정세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협의 결과는 유동적이다. 김현국 탐험가는 “선의로 준비해 온 일도 외부 정세에 따라 한순간에 방향이 바뀔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하는 요즘”이라며 “그럼에도 준비는 끝까지 감당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8월 3일부터 5일까지 공식 일정으로 방한한 레일라 조토바 러시아 연방 청년청 부청장(오른쪽에서 2번째)과 알렉세이 스타노니스 러시아 세계청년 축제 사무국 팀장(왼쪽 첫번째)이 김현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맨 오른쪽). 김현국 탐험가(왼쪽에서 2번째)와 함께 주한 구 러시아 공사관을 찾았다.
8월 3일부터 5일까지 공식 일정으로 방한한 레일라 조토바 러시아 연방 청년청 부청장(오른쪽에서 2번째)과 알렉세이 스타노니스 러시아 세계청년 축제 사무국 팀장(왼쪽 첫번째)이 김현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맨 오른쪽). 김현국 탐험가(왼쪽에서 2번째)와 함께 주한 구 러시아 공사관을 찾았다.

한반도의 분단은 1945년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논리에서 비롯됐다. 오늘날 유라시아 대륙은 56억 인구의 거대시장이자 자원의 보고로 세계의 시선을 받고 있고, 미국의 신실크로드 이니셔티브·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중국의 일대일로, 지구온난화로 주목받는 북극해 항로까지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는 지금, 그 대륙의 시작점이 바로 한반도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한민국은 대륙과 가장 가까운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먼 나라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독일 분단과 재통일의 상징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토르를 찾은 김현국 탐험가(왼쪽).
독일 분단과 재통일의 상징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토르를 찾은 김현국 탐험가(왼쪽).

◇ 누구나 걷는 길로…“유라시아 컴플렉스”를 꿈꾸다

김현국 탐험가가 30년째 이 길을 기록해 온 이유는 단순하다. 언젠가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도 자신의 차를 몰고 유라시아를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믿음, 그리고 그 길을 미리 기록해 둬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제7차 대륙횡단 다음 단계로 그리는 그림도 같은 맥락이다. 직접 횡단할 여건이 안 되는 사람도 이 길을 체험하게 하는 일이다.

온라인에서는 인공지능(AI) 게임과 증강현실(AR) 아바타로 누구나 화면 속에서 유라시아 대륙횡단 경로를 따라가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구상하고 있다. 실제 도로와 지형, 국경과 도시를 기반으로 시베리아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길을 게임처럼 체험하게 하자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유라시아'를 전면에 내세운 여행자 복합공간 '유라시아 컴플렉스'를 계획하고 있다. 30년간 쌓아온 기록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유라시아를 주제로 한 정보와 경험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김 탐험가에게 30년의 기록은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 길은 사람을 연결하고, 경제를 연결하며, 미래를 연결한다는 것이다. 서울~부산 400㎞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다. 남은 질문은 그 일상의 반경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느냐다.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으로, 언젠가 DMZ를 넘어 다시 대륙으로 이어지는 길. 그는 오늘도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길은 평화다!”

김현국 탐험가의 제7차 대륙횡단 이동 루트(예상도).
김현국 탐험가의 제7차 대륙횡단 이동 루트(예상도).

전남광주=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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