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토큰 증권 시장은 아직 준비 단계다. 2026년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분산 원장을 증권계좌부로 활용할 법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시행은 2027년 2월 4일이다. 현재 발행·거래되는 부동산·음원 수익증권은 대부분 기존 전자증권 제도와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한 조각 투자 상품이다. 법 시행을 앞두고 토큰증권의 발행·유통·결제에 관한 세부 제도와 시장 인프라가 구체화되고 있다.
조각 투자의 발행 실험은 음원, 부동산, 미술품, 한우, 항공기 엔진 등 다양하다. 하지만 다양한 상품이 발행됐다고 해서 활발한 유통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 간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을 만드는 것은 별개의 과제기 때문이다.
실제 거래 규모는 아직 작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조각투자 샌드박스 사업자 4곳의 2024년 연간 거래금액은 매수액 기준 뮤직카우 84억원, 루센트블록 33억원, 카사코리아 21억원 등 약 145억원에 불과하다. 당국은 발행사별로 분절된 유통구조를 제도권 시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지난 2월 NXT 컨소시엄과 KDX를 수익증권 장외거래중개업 예비인가 대상으로 선정했다. 다만, 이번 인가는 기존 전자증권 방식의 신탁수익증권 유통이라는 제한이 있다. 따라서 향후 분산 원장 기반 수익증권과 투자계약증권 등도 본격적으로 거래되려면 보다 구체적인 인가·공시·거래·결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시장에선 발행보다 유통이 어렵다고 본다. 왜 그런가. 첫째, 개별 종목에 대한 거래 수요가 충분히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음원·부동산·미술품을 잘게 나눠 발행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투자자가 매수한 증권을 다시 팔려고 할 때다. 조각 투자는 자산마다 특성이 다른 비정형 상품이 많은 데다 종목별 발행 규모와 투자자 기반도 상대적으로 작다. 이 때문에 투자자가 팔고 싶은 시점에 같은 종목을 사려는 사람이 충분치 않을 수 있다. 매수 주문이 부족하면 호가 차이가 벌어지고, 급히 현금화하려는 투자자는 기초자산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울며 겨자 먹기'로 팔 수도 있다.
둘째, 적정가격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상장주식은 실적과 공시자료가 지속적으로 제공돼 적정가격을 판단하고 유사 기업과 비교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 조각 투자는 건물마다 입지와 임대 조건이 다르고, 음원·미술품도 개별성이 강해 표준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부동산은 감정가와 실제 매각 가격이 다를 수 있고, 음원은 가수 활동과 유행 등에 따라 수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거래가 적은 시장에서는 최근 거래가격조차 자산의 적정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수 있다.
셋째, 유동성을 계속 공급할 주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발행사가 직접 가격을 떠받치면 이해 상충 또는 시세조종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종목별 거래량이 적으면 상시 호가 제공을 통한 수익 가능성 대비 위험 부담이 크다. 주식과 ETF 시장에는 증권사와 전문적인 유동성공급자가 있지만, 조각 투자 시장에선 이들의 역할과 책임을 규율하는 제도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우선 수익증권 장외거래중개업 인가제를 도입한 만큼, 발행사별로 흩어져 있던 거래를 인가받은 제도권 장외시장으로 모아 유동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예컨대 투자자가 어느 플랫폼에서 청약했든 인가받은 제도권 장외시장에서 다양한 상품을 비교하고 거래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그것이다. 종목 코드, 계좌체계, 주문·체결 정보, 권리이전과 결제 방식을 표준화하고 발행플랫폼, 증권사, 전자 등록기관 사이의 시스템도 연계할 필요가 있다. 복수의 시장이 운영되더라도 종목정보·권리기록·결제 등 핵심 규격을 표준화해 시장 간 단절로 유동성이 다시 분산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상품 특성에 맞는 유동성 공급제(시장조성자 시스템)도 필요하다. 예컨대 일정 규모와 표준성을 갖춘 상품에는 증권사나 전문 유동성공급자가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하는 방안이다. 다만 발행 공모자금을 가격 방어에 사용하는 것은 이해 상충 우려가 있는 만큼, 별도의 유동성 재원과 계약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대 호가 스프레드, 최소 주문 수량, 재고 한도를 공개하고 발행사와 관계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조각 투자의 비정형 성격을 고려하여, 일정 기간 주문을 모아 한 가격으로 체결하는 단일가 매매나 정기 경매 등 매매 방식의 다양화도 고려할 만하다. 또 동일한 유형의 부동산이나 저작권을 묶어 포트폴리오 상품으로 만드는 방안도 개별 자산의 위험을 분산하고 발행 규모와 유통 물량을 키우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요컨대 자산 특성에 따라 연속 매매, 정기 경매, 환매 방식 등 다양하면서도 유연한 매매 방식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 발행사와 연계하여 조각 투자 상품의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 및 데이터의 공시도 중요하다. 음원의 경우 최근 저작권료 정산액과 스트리밍 추이, 부동산은 임대 수입과 공실률처럼 기초자산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유통 활성화가 투자자 보호 완화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기초자산은 발행사 재산과 분리해 신탁하거나 도산절연 구조를 갖춰야 하고, 독립된 평가기관이 자산가치와 현금흐름을 정기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만기, 자산 매각 조건, 환매 절차와 손실 발생 시의 책임 관계 등도 발행 단계부터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결국 조각 투자 시장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상품을 발행했느냐보다 투자자가 원할 때 합리적인 가격으로 매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종목별 거래대금과 회전율, 매수·매도 호가 차이, 체결 시간, 기초자산 가치 대비 할인율 등이 시장의 핵심 지표다. 발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유통은 상품이 존재하는 동안 계속된다. 조각 투자와 토큰 증권의 경쟁력은 발행 기술보다 신뢰할 수 있는 가격과 지속 가능한 출구를 제공하는 시장구조에서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겸 AI디지털경제금융포럼 의장 정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