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첫 고객을 정부가 만든다…중국 '첫 장비·첫 소재·첫 소프트웨어' 정책 [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8/11/news-p.v1.20260811.06be0e3d89fc4381af5ddf3c644d57c9_Z1.png)
중국 산업정책을 보조금과 저리대출만으로 읽으면 중요한 절반을 놓치게 된다. 기술기업이 가장 어려워하는 순간은 연구개발비를 받을 때가 아니라, 아무도 써본 적 없는 제품을 첫 고객에게 판매할 때다. 성능이 좋아도 운용 이력과 납품실적이 없으면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구매를 미룬다. 제조사는 고객이 없어서 실적을 만들지 못하고, 고객은 실적이 없어서 구매하지 않는 순환에 빠진다.
중국은 이 문제를 첫 중대기술장비(首台 (套) 重大技术装备), 첫 적용 신소재(首批次新材料), 첫 상용 산업용 소프트웨어(首版次软件()라는 이른바 '세 가지 첫 제품' 제도로 풀어 왔다. 장비·소재·소프트웨어를 별도로 인정하고, 목록·보조금·정부조달·실증·보험을 붙여 첫 시장을 만든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의 '세 가지 첫 제품' 정책은 좋은 기술을 인증하는 제도가 아니라, 시장이 아직 증명하지 못한 기술에 정부가 첫 거래의 신뢰를 만들어주는 수요정책이다.
첫 중대기술장비(首台 (套)는 중국 내에서 중대한 기술혁신을 거쳐 개발됐고 독자적인 지식재산권을 보유했지만 아직 충분한 시장실적이 없는 장비와 핵심부품을 뜻한다. 반드시 세계 최초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공급망에서 처음 국산화됐거나 기존 제품을 대체할 정도로 중요한 기술혁신이 있어도 대상이 될 수 있다.
첫 적용 신소재(首批次)는 새로운 조성·공정·성능을 갖춘 소재가 처음 산업현장에 적용되는 구간을 지원한다. 소재는 시험성적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객 생산라인에서 반복적으로 같은 품질을 내고, 부품과 완제품 수명·안전·수율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첫 상용 산업용 소프트웨어(首版次)는 핵심기술의 중대한 돌파와 독자 지식재산권을 갖췄지만 초기 시장단계에 있는 산업용 소프트웨어를 가리킨다. 연구개발 설계, 생산제어, 제조운영, 경영관리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가 주요 대상이다. 소프트웨어에도 '첫 제품' 정책이 붙는 이유는 공장 운영체제를 바꾸는 비용과 책임이 하드웨어 못지않게 크기 때문이다.
세 제도는 자동으로 이어지는 전국 단일 인증사다리가 아니다. 중앙정부가 기본방향과 분야별 목록을 제시하고, 성·시가 인정기준·보상방식·조달연계와 보험지원 범위를 설계한다. 같은 제품이라도 지역과 연도, 산업분류에 따라 지원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기업이 첫 제품으로 인정받는다고 곧바로 매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중국 정책은 인정 이후 수요를 만드는 여러 장치를 붙인다. 지방정부는 인정제품을 추천목록에 올리고, 국유기업과 공공기관 시범적용을 장려하며, 정부조달과 주요 프로젝트에서 우선 검토하도록 한다.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보험료나 위험보상 혜택을 제공하는 지역도 있다.
광둥성은 2026년 첫 중대기술장비에 대해 실제 판매가격 일정 비율을 사후보상하는 정책을 운용한다. 조건을 충족한 장비는 세전 판매가격 30%를 기준으로 지원대상이 될 수 있다. 또 광둥 산업정책은 '세 가지 첫 제품'을 정부조달, 대규모 장비교체와 응용현장 목록에 연결하도록 하고 있다.
베이징 사례는 이 정책이 목록을 넘어 판매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베이징시는 2025년 첫 중대기술장비 지원대상으로 127개 기업 158개 제품을 선정했고, 이들 제품은 약 4만2000대·세트, 105억위안, 약 15억5000만달러 판매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모든 매출이 정책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정·실증·구매가 하나의 시장진입 통로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정책의 본체는 보조금이 아니라 '처음 사도 되는 제품'이라는 공적 신호다. 구매기업 기술·재무·감사 부서는 새로운 공급자를 받아들일 명분을 얻고, 제조사는 첫 레퍼런스를 확보한다. 금융기관과 투자자는 제품이 실제 현장에 들어갔다는 데이터를 추가로 확인할 수 있다.
중대장비는 고장과 생산중단 위험이 크다. 신소재는 장기간 사용한 뒤 결함이 발견될 수 있다. 산업용 소프트웨어는 데이터 이전, 생산제어 중단과 사이버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은 이를 하나의 보조금으로 처리하지 않고 인정·시험·보험·시범적용을 업종별로 조합한다.
장비 분야에서는 형식시험과 현장검증, 고객 사용보고서가 중요하다. 소재 분야에서는 샘플과 파일럿 생산, 고객라인 평가, 완제품 성능검증이 핵심이다. 소프트웨어는 기능시험뿐만 아니라 기존 설비·데이터·운용체계와 호환성, 안정성, 보안과 유지보수가 검증돼야 한다.
이 구조는 앞선 파일럿 검증과 시험·검사·인증 정책을 첫 시장으로 연결한다. 연구실에서 만든 기술은 파일럿 플랫폼에서 생산 가능성을 확인하고, 시험·인증으로 기준 충족을 증명한 뒤, '세 가지 첫 제품' 목록과 조달·보험을 통해 첫 고객에게 들어간다. 중국이 산업정책을 개별사업이 아니라 연속된 경로로 설계하는 방식이다.
중국 지방정부에 첫 제품 정책은 기업지원인 동시에 투자유치 도구다. 지역에 공장과 연구개발조직을 둔 기업을 대상으로 인정과 보상을 제공하고, 지역 국유기업·산업단지·병원·교통기관을 초기 고객으로 연결한다. 기술기업은 매출과 레퍼런스를 얻고, 지방정부는 공급망 빈칸을 채운다.
반도체 도시에서는 장비·소재·EDA와 공정제어 소프트웨어가 우선되고, 자동차 도시에서는 차량용 반도체·센서·배터리·자율주행과 생산소프트웨어가 강조된다. 에너지 지역은 수소·저장장치·전력설비, 의료산업 도시는 진단·수술·의료기기와 바이오소재를 선별한다.
그러나 이 방식은 시장 수요와 지방정부 산업유치 목표를 혼합한다. 제품을 실제로 필요로 해서 구매하는지, 정책목표를 맞추기 위해 실적을 만드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지원이 끝난 뒤 외부 고객과 반복매출이 생기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첫째는 '최초' 인플레다. 세부시장을 지나치게 좁히거나 기존제품의 작은 변경을 기술혁신으로 포장하면 목록 선별력이 떨어진다. 인정기관은 독자 지식재산권, 기술수준, 시장실적, 공급망 대체효과를 교차검증해야 한다.
둘째는 지방보호다. 지역제품을 지역 국유기업이 구매하고 다른 지역 제품을 배제하면 전국시장 통일성이 약해진다. 중국 표준화 정책도 지방보호와 시장 분할을 줄이려 하지만, 지방정부 투자유치·조달성과와 충돌할 수 있다.
셋째는 사용자의 도덕적 해이다. 보험과 보상으로 손실이 가려지면 구매자가 충분한 기술검토 없이 제품을 도입하거나 제조사가 품질책임을 보험에 넘길 수 있다. 지원은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분담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넷째는 보조금 이후 시장이다. 첫 고객이 생겼어도 제품가격과 유지비, 품질이 경쟁력이 없으면 두 번째 고객은 나타나지 않는다. 정책평가는 인정건수와 지원금보다 비보조 고객 비중, 반복구매, 외부지역 매출, 수출과 공급망 진입으로 바뀌어야 한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도 지역 인정·실증·조달 체계에 접근할 수는 있다. 다만 중국 법인이 현지에서 연구개발·생산·판매를 수행하고, 신청 제품 지식재산권과 국산화·공급망 기여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본사에서 완성한 제품을 단순 수입해 판매하는 모델보다 중국 법인이 현지 고객과 공동개발하고 시험·인증·애프터서비스를 책임지는 구조가 유리하다.
한국 기업이 확인할 항목은 지원금보다 넓다. 제품 인정 유효기간, 현지 매출과 납품실적 요건, 정부조달의 외국인 투자기업 동등대우, 핵심기술과 소스코드 제출범위, 데이터의 중국 내 저장, 하자책임과 보험, 지원 종료 뒤 가격조건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기술을 현지법인에 이전하거나 공동 소유할 때는 한국 본사와 중국 법인 지식재산권 경계를 계약으로 분명히 해야 한다.
반대로 한국 기업은 중국의 '세 가지 첫 제품' 기업을 파트너나 경쟁자로 평가할 때 인정서만 보면 안 된다. 어느 기관이 시험했고 어떤 고객이 실제로 사용했는지, 보험과 보조금 없이 반복주문이 발생했는지, 외부 지역과 해외에서 매출이 나오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첫 제품 인정은 시장진입 신호이지 기술·재무 실사의 대체물이 아니다.
첫 제품 정책 성공 여부는 지원기업 수나 인정목록 길이로 판단하기 어렵다. 정책으로 만들어진 첫 구매가 실제 시장을 열었는지 확인하려면 세 단계 지표가 필요하다. 첫째는 현장운영 지표다. 고장률, 수율, 유지보수 비용, 보안·안전사고를 측정해야 한다. 둘째는 시장확산 지표다. 보조금 없는 외부 고객, 다른 지역 매출, 반복구매와 수출을 봐야 한다. 셋째는 공급망 지표다. 수입대체만이 아니라 국내 부품·소프트웨어 기업과 공동개발, 표준·인증의 확산까지 확인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이 데이터를 공개하면 구매기관과 투자자는 위험을 더 정확히 가격화할 수 있다. 반대로 실패사례를 감추면 다음 구매자는 같은 시험을 반복하고, 정책은 실적을 만들기 위한 일회성 조달로 흐른다. 중국의 첫 제품 정책이 산업제도로 정착하려면 성공제품의 홍보뿐만 아니라 실패 원인과 개선과정을 시장의 공동학습 자산으로 남겨야 한다.
한국에도 혁신제품 지정, 우수조달물품, 실증사업, 공공조달과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이 있다. 문제는 연구개발·실증·조달·보험이 서로 다른 사업으로 나뉘고, 구매 담당자가 실패위험을 개인적으로 떠안는다는 데 있다.
정부는 반도체·바이오·로봇·에너지·산업소프트웨어처럼 첫 적용위험이 큰 분야에 '첫 제품' 경로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기술성만 평가해 목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파일럿 검증, 시험·인증, 조건부 구매, 보험과 사후평가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연결해야 한다.
지자체는 지역기업 제품을 무조건 구매하기보다 지역 주력산업 공백을 공개하고, 외부기업도 동일조건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실증·조달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은 신기술 성능·원가·안전 기준을 사전에 공개하고, 통과한 기업에 조건부 구매나 공급자 등록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금융권과 벤처캐피털은 첫 제품 인정 자체를 투자결론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실제 구매자 기술평가, 반복사용, 하자책임, 보험조건과 유지보수 능력을 확인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특허이전 이후 첫 산업고객을 확보할 때까지 시험·인증·기술지원에 참여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지원목록에 들어가는 것보다 두 번째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원가와 품질을 먼저 설계해야 한다.
중국의 '세 가지 첫 제품' 정책에서 배울 것은 정부가 제품을 대신 팔아주는 방식이 아니다. 구매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첫 사용위험을 시험·보험·조달로 나누고, 시장이 기술을 평가할 첫 기회를 만드는 방식이다. 한국 산업계는 좋은 기술을 선정하는 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그 기술을 처음 사는 조직의 위험과 책임까지 설계할 것인가.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