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교실에 빠르게 스며들면서 학생들이 내놓는 결과물의 완성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 매끄러운 문장, 짜임새 있는 보고서, 그럴듯한 발표 자료가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그러나 결과물의 완성도와 학습자의 성장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AI가 어떤 질문에도 유창하게 답하는 시대에는 그 답을 읽는 것만으로 스스로 이해했다고 믿는 '유창성 착각'이 생기기 쉽다. 과제는 완성됐지만 진정한 학습과 성장은 일어나지 않는 '가짜 학습(fake learning)'의 위험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학습(學習)'이라는 말은 '배울 학(學)'과 '익힐 습(習)'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공자는 '논어' 첫머리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다. 여기서 '습(習)'은 어린 새가 날갯짓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나는 법을 익히는 모습에서 나온 글자다. 배움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면, 익힘은 그것을 되풀이해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배움'에만 눈길을 두지만, 배운 것을 몸에 새기는 '익힘'이야말로 학습을 완성한다. AI 시대에 우리가 정작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익힘'이다.
익힘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지식에는 두 유형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외워 말하는 것과 실제 삼각형 앞에서 빗변의 길이를 구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진짜 배움은 '아는 것'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넘어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이 넘어감은 보고 듣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전거 타는 법을 떠올려 보면 분명해진다. 아무리 정교한 설명서를 읽거나 다른 사람이 타는 모습을 많이 보더라도, 본인이 페달을 밟고 넘어지고 다시 올라타며 균형을 몸에 새기는 반복 없이는 누구도 자전거를 탈 수 없다. 수학 문제 풀이도, 수영도, 악기 연주도, 우리말의 감각도 마찬가지다. 몸에 밴 역량은 직접 경험하고 실패하고 되돌아보는 더딘 과정을 되풀이할 때에만 자란다. 바로 '익힘'의 과정이다. AI가 이 씨름을 대신해 주면 결과물은 완성되지만 학습은 이뤄지지 않는다. 스스로 끙끙대며 풀어 본 것만이 시간이 지나도 남고, 눈으로 편하게 읽고 지나간 것은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힘없이 무너진다. 배운 것을 새로운 상황에 옮겨 쓰는 힘, 곧 '전이(transfer)'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 위험은 유·초등 단계에서 특히 크다. 이 시기는 인지와 정서의 기본 틀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이며, 이 때의 배움은 머리만이 아니라 몸과 손을 함께 쓰는 활동을 통해 뿌리내린다. 분수를 배우는 아이가 피자를 직접 나눠 보고, 곤충을 관찰하고, 친구와 토론하며, 자기 언어로 서툴게 써 보는 경험 그 자체가 뇌에 자국을 남긴다. 유·초등교육에서 직접 손으로 익히는 교육(hands-on education)이 강조되는 이유다.
기초 개념의 얼개가 자리 잡기도 전에 AI를 무분별하게 활용하도록 하면 학습 과정은 겉으로 단축되지만 이해의 깊이는 치명적으로 얕아진다. 아이가 스스로 씨름하고 넘어지며 배울 기회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흔적이 오래 남는다는 점이다.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곧바로 AI에 맡기는 행동이 반복되면, 그것은 어느새 의식적 선택이 아니라 자동화된 습관으로 굳어진다. 스스로 씨름해 본 경험이 쌓이지 않은 아이는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 대신 '어려운 것은 AI가 해야 한다'는 무기력을 먼저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AI를 교실에서 몰아내자는 말은 아니다. 관건은 도입 여부가 아니라 '순서'와 '방식'이다. 학습자가 먼저 스스로 문제와 씨름해 머리를 충분히 쓴 뒤, AI로 생각을 확장하고, 그 과정을 다시 되돌아보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 순서가 지켜져야 한다. 같은 AI라도 생각을 대신하는 지름길로 쓰면 목발이 되지만, 생각을 촉발하는 동반자로 활용하면 날개가 된다. 특히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이 부족한 단계에서는 아이가 '먼저 씨름한 다음'에 AI를 만나도록 하는 세심한 설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집에서 “AI로 숙제하라”고 권하는 학부모까지 등장하고 있다. 아이의 시간을 아껴 주려는 선의일 수 있으나, 그 한마디가 아이에게서 스스로 익힐 기회를 통째로 앗아갈 수 있다는 점은 놓치기 쉽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익힘의 과정을 건너뛰게 하는 순간, 아이는 완성된 과제 한 편을 얻는 대신 스스로 자라날 기회를 잃는다. 자전거를 대신 타 주는 부모가 결코 아이를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AI 시대에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어른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결과물 차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배움과 익힘의 과정이다. 아이가 스스로 씨름했는지, 어디에서 막혔고 무엇을 건너뛰었는지, 완성된 과제 뒤에 실제 이해가 자리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에 무심코 박수를 보내기보다 “이 부분은 왜 그렇게 생각했니”라고 되묻는 질문 하나가 아이의 사고를 되살린다. 때로는 결과물이 너무 완벽하다는 것 자체가 경고의 신호일 수 있다. 성급한 AI 사용을 방치하지 않고 적절한 때에 개입해 이끄는 세심한 관찰과 지도야말로, 가짜 학습을 진짜 학습으로 되돌리는 가장 현실적인 처방이다.
기술은 저절로 교육 혁신을 만들지 못한다. 그 방향은 결국 우리가 AI를 어떻게 쓰기로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다. 스스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몸에 새긴 것만이 끝내 그 아이의 것으로 남는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그 오래된 기쁨을 아이에게서 빼앗지 않는 것, AI 시대 교육이 끝까지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이다.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
〈필자〉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을 맡고 있는 미래교육 전문가다. 정 원장은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4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사무관과 서기관을 거치며 교육정책 기획 및 집행을 수행했다.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해 교육학과장, 호크마교양대학장, 기획처장, 미래교육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과 학술정보 시스템의 디지털 대전환을 선도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제12대 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