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진의 K-사진과 미래]대한민국 사진산업 지도를 그릴 시간

강종진 전 사진산업진흥법제정위원회 위원장
강종진 전 사진산업진흥법제정위원회 위원장

사진진흥법이 제정되면서 가장 주목해야 할 조항 가운데 하나가 제6조 '실태조사'이다. 많은 사람들은 실태조사를 단순히 통계를 작성하는 행정 절차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조항이 앞으로 대한민국 사진계의 미래를 바꿀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진산업의 모습을 단 한 번도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영화산업백서가 있다. 콘텐츠산업 통계도 있다. 출판산업과 게임산업 역시 매년 산업 규모와 종사자, 수출입, 시장 동향 등을 체계적으로 조사한다. 이러한 자료를 기반으로 정부는 예산을 편성하고 연구개발 과제를 기획하며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해외 진출 전략을 수립한다.

그러나 사진은 달랐다. 사진관이 몇 곳인지 정도는 알 수 있지만 대한민국 사진산업이 얼마나 큰 시장인지, 사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문인력이 얼마나 되는지, 사진기술이 어떤 산업에서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 조차 국가 차원에서 조사된 적이 거의 없다.

정책은 데이터 위에서 만들어진다. 데이터가 없다는 것은 정책도 없었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만들어질 사진산업 통계는 기존의 단순한 산업조사와는 달라야 한다. 사진관과 스튜디오 숫자를 세는 조사로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사진기술이 활용되는 모든 산업을 연결하여 대한민국 사진산업의 전체 지도를 그려야 한다.

사진산업은 어디까지인가? 우리는 먼저 사진산업의 개념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 사진산업은 사진관 산업이 아니다. 사진작가만의 산업도 아니다. 사진은 이미 다양한 산업의 핵심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강종진의 K-사진과 미래]대한민국 사진산업 지도를 그릴 시간

이러한 산업을 모두 포함해야 비로소 대한민국 사진산업의 실제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무엇을 조사해야 하는가? 실태조사는 단순한 사업체 조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최소한 다음과 같은 국가 통계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① 사진산업 총생산(GDP) ② 사진 관련 사업체 및 기업 현황 ③ 사진산업 종사자와 직업 분류 ④ 사진인의 평균 소득과 고용 구조 ⑤ 사진학과 졸업생의 진로 추적 ⑥ 사진 기반 창업과 스타트업 현황 ⑦ AI 활용과 이미지 데이터 시장 ⑧ 건축·드론·문화유산 등 융합산업 규모 ⑨ 사진 관련 연구개발(R&D) 투자 현황 ⑩ 국제교류와 수출입 시장. 이러한 데이터가 축적되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새로운 시장이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통계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는 일이다. 많은 청년 사진인들은 졸업 후 선택지가 사진관이나 스튜디오, 프리랜서 정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가 사진산업을 조사하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지도가 나타날 수 있다. 문화재 디지털 기록 전문가가 얼마나 필요한지, 건축사진 시장이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 AI 기업에서 사진전문가를 얼마나 채용하는지, 디지털트윈 구축 사업에서 어떤 역량을 요구하는지, 의료와 과학 분야에서 사진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사진인의 새로운 진로를 발견하는 일이다. 대학은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할 수 있고, 정부는 새로운 연구개발 과제를 기획할 수 있으며, 기업은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 청년들은 더 넓은 시장을 보고 창업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다.

사진산업백서를 만들자. 나는 사진진흥법 시행 이후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국가 프로젝트로 '대한민국 사진산업백서' 발간을 제안한다. 게임에도 게임산업백서가 있고, 콘텐츠에는 콘텐츠산업백서가 있다. 사진도 이제는 매년 사진산업의 규모와 변화, 기술 동향, AI 활용, 국제시장, 교육, 연구개발, 정책 성과를 담은 국가 백서를 발간해야 한다. 이 백서는 단순한 통계자료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진정책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사진의 미래는 통계에서 시작된다. 사진진흥법 제6조는 실태조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단순한 실태조사가 아니다. 대한민국 사진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국가 지도다. 그 지도 위에는 사진관과 스튜디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축과 문화유산, 드론과 디지털트윈, AI와 스마트팩토리, 의료와 과학, XR과 메타버스까지 사진이 활용되는 모든 산업이 함께 그려져야 한다.그때 비로소 우리는 사진을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 하나의 예술이 아니라 미래를 움직이는 핵심 시각기술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진산업 통계는 숫자를 모으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진의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장을 사진인들에게 연결하는, 사진진흥법 이후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국가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강종진 전 사진산업진흥법제정위원회 위원장 jongje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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