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부재로 폐업 위기에 놓인 중소·중견기업을 임직원이 직접 인수해 경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기업승계 모델이 추진된다. 친족 중심의 가업승계를 넘어 임직원 인수를 제도권 승계 방식으로 끌어들이고, 인수 과정에서 개인에게 과도한 채무 부담이 지워지지 않도록 금융·세제 지원을 뒷받침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주식 인수뿐 아니라 영업양수도와 사업부 인수까지 대상을 넓히고 기업 규모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인수 모델을 허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은수 의원은 24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임직원 기업인수 촉진을 위한 입법방향 토론회'를 열고 임직원 기업인수를 활성화하기 위한 이같은 내용의 특별법 제정 방향을 논의했다.
전 의원은 개회사에서 후계자가 없어 존속이 불투명한 제조업체가 5만6000곳에 이르고, 이 가운데 83%가 비수도권에 몰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의원은 “이 기업들이 문을 닫는다면 여파는 바로 지역 경제와 일자리로 이어질 것”이라며 “친족 승계를 넘어 기업승계의 제도적 기반을 다양화하는 일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이동한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정책전문위원은 임직원 소유가 기업승계 공백을 메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중소기업 소유 이전의 92%가 폐업으로 끝난다는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임직원 소유와 같은 승계 제도가 정비돼야 폐업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정미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영리 특수법인인 '기업인수목적법인'이 기업의 지배지분을 보유하고 임직원이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한 연구위원은 “임직원이 직접 경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라며 “임직원 개인에게 직접 채무를 지우지 않는 인수금융이 기본 전제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임직원 인수 사례도 소개됐다. 2017년 임직원 830명과 함께 한국종합기술을 인수한 김영수 한국종합기술홀딩스 대표는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인수가 막히고 제1금융권에서도 대출을 거절당하자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직원들이 5000만원씩 출자하는 방식으로 인수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토론에서는 특별법이 실제 현장의 다양한 기업 인수를 포괄하려면 인수 대상과 방식부터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박노근 한국외국어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설계안이 주식 인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영업양수도나 사업부 인수 같은 내용이 빠져 있어 실질적인 직원 인수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며 재무적 곤경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뤄지는 인수까지 제도 안에 포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 규모에 따라 인수 구조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장종익 한신대 교수는 “규모가 크고 건실한 중견기업에는 별도 법인이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이 적절할 수 있지만 직원 20~30명 규모의 소기업에는 노동자협동조합에 출자하는 방식도 가능하다”며 “하나의 모델로 제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인수금융 과정에서 임직원의 책임과 정부 지원 간 균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병연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원들이 일정 부분 직접 출자하는 것이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정책자금과 임직원 차입을 함께 연계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정부가 사기업 간 거래 자체를 보증하는 것은 현행법상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제도가 실제 작동하려면 세제 지원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제도 설계에 참여한 정대섭 한양대 법학연구소 박사는 “세제가 효율적이지 않으면 아무 메커니즘도 작동하지 않는다”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 거래 자체가 깨질 수 있어 가장 단순한 구조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예우영 대외환경대응과장은 “열악한 기업들도 채무 부담 없이 쉽게 갈 수 있게 하겠다”며 “의견들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