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콘텐츠 산업 위기진단]〈4·끝〉 콘텐츠 없이 플랫폼도 없다

백승일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 회장
백승일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 회장

유료방송플랫폼과 콘텐츠사업자(PP와 지상파)는 유료방송 생태계 안에서 공생관계여야만 한다. 그러나 콘텐츠 대가를 둘러싼 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가운데 플랫폼은 '비용 절감'을, 콘텐츠사업자는 '정당한 대가'를 주장하며 반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일 국회에서 개최된 정책 세미나는 주목할 만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내쉬(John Nash)의 협상모델(Bargaining Model)을 활용해 유료방송플랫폼과 콘텐츠사업자간의 상생의 기준점을 찾으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내쉬의 협상모델은 노사 임금협상이나 국제 무역협상 등 실제 이해관계가 첨예한 현장에서 오랫동안 검증돼 온 방법론으로 협상력의 우위가 아닌 이론적 정합성에 기반해 상생의 기준점을 제시하는 모델이다.

내쉬(Nash)의 협상모델을 적용해 국내 유료방송플랫폼이 지상파와 PP에 지불한 콘텐츠 사용료의 '적정 총액'을 산출한 결과, 지난해 적정 지급액은 2조8859억원인 데 비해 실제 지급액은 1조6264억원으로 약 1.3조원의 차이가 난다. 어느 한쪽의 주장이 아니라 정부가 발간하는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에 기재된 방송사업자들의 손익계산서에 이론을 대입해 얻은 값이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콘텐츠사업자 전체의 순증이익은 -3조 991억 원에서 -4조 711억 원으로 악화됐다. 반면 유료방송 플랫폼은 1조4653억 원에서 1조7007억 원으로 늘어났다. 제작비 상승 부담이 고스란히 콘텐츠 사업자 쪽에 귀속돼 온 결과다.

지난해 IPTV는 기본채널 수신료, 홈쇼핑 송출수수료, 단말장치 대여 수익 등으로 4조4454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PP와 지상파에게 지급한 콘텐츠 사용료의 합은 1조697억 원으로 24%에 불과하다. 콘텐츠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유료방송 사업에서 콘텐츠에 돌아가는 몫이 4분의 1 밖에 안되는 것이다.

SO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SO는 2025년부터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콘텐츠 사업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거래 상대인 지상파와 PP들의 동의는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SO들이 콘텐츠 대가를 원가가 아닌 비용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SO들은 가입자와 홈쇼핑 송출수수료 매출이 감소하고 있어 콘텐츠 대가를 일방적으로 삭감하겠다는 주장을 되풀이 한다. 내가 어려우니 깎아야 하고, 다른 유료방송사보다 더 주고 있으니 깍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용약관 구조를 비교해 보면 그 주장의 허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IPTV는 방송상품을 정액으로 판매하지만, SO는 '2만원 이하'처럼 상한만 정하고 판매한다. 200여 개가 넘는 채널을 제공하면서 1만원에 팔기도 하고, 2000원 이하로도 판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월 가입자당 매출(ARPU)은 IPTV가 1만1523원, SO는 3863원으로 3배 차이가 난다. SO가 다른 유료방송 플랫폼보다 매출에 비해 콘텐츠 사용 대가를 더 주고 있는 것처럼 착시가 발생하는 이유다.

콘텐츠가 무너지면 플랫폼도 무너진다. 아무리 좋은 플랫폼을 만들어도 시청자가 볼 콘텐츠가 없다면 그 플랫폼은 유지될 수 없다. 플랫폼의 경영 상황이 예전보다 좋지 않다고 해서 콘텐츠 대가와 같은 원가를 줄이는 것은 방송 콘텐츠 산업의 핵심 경쟁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SO는 방송상품의 헐값 판매를 중단하고 지역 밀착형 사업 발굴을 통해 수익원을 확대해야 한다. IPTV는 방송을 통신상품의 미끼로 판매하는 사업자가 아니라 방송과 통신을 동등하게 대하는 사업자로 변모하여야 한다. AI 시대를 맞아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로부터 방송 사업 허가권을 얻어낸 주체로서 방송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책임을 더 이행하여야만 한다. 정부도 요금인상을 억제해 온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야 K콘텐츠 산업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백승일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 회장 baekster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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