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작가, 밥·국·찬으로 한국 밥상의 기원 추적
에드워드 리·'프렌치 파파' 이동준 셰프 추천
![[신간] “한식은 생존투쟁이 남긴 맛있는 흉터”···'밥 국 찬, 한식의 탄생'](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9/17/news-p.v1.20260917.98b554e8851b4a2ba48a9c588a00859a_P1.png)
한국인은 왜 밥과 국을 함께 먹을까. 왜 한 끼 식사에 여러 반찬을 펼쳐 놓고 먹으며, 김치와 나물, 쌈을 즐길까. 익숙해서 미처 질문하지 않았던 한국 밥상의 구조를 역사와 환경, 생존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 나왔다.
작가이자 평론가인 홍대선이 신간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을 통해 한국인의 식문화가 형성된 과정을 추적한다.
책은 한식을 우수한 식문화로 찬양하거나 가난했던 시대의 산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산지가 많고 사계절의 변화가 크며 여름철 집중호우로 토양과 영양분이 쉽게 유실되는 한반도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인의 조상들이 선택하고 축적한 생존 방식에서 한식의 기원을 찾는다.
저자는 이를 “한식은 생존투쟁이 남긴 맛있는 흉터”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한반도에서 가뭄과 수해,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온 사람들이 먹고사는 방법을 끊임없이 갱신한 결과가 오늘날의 한식이라는 설명이다.
책의 중심에는 제목 그대로 '밥·국·찬'이 있다. 먼저 밥은 단순한 주식을 넘어 한국인의 삶과 언어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밥심', '밥그릇', '밥값', '밥줄', '찬밥 신세'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높은 인구 부양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집약적인 벼농사에 의존했던 역사 속에서 밥은 생존을 위한 에너지가 됐고, 밥그릇은 자신의 몫과 생존권을 상징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국 역시 밥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했다. 저자는 한국인이 '밥의 민족'이기 때문에 동시에 '국물의 민족'이 됐다고 설명한다. 곡물 중심의 주식을 보다 쉽게 먹기 위한 조력자로 국이 발달했고, 밥은 왼쪽에, 국은 오른쪽에 놓는 '좌반우갱'이라는 익숙한 밥상 구조로 정착했다.
찬은 척박한 환경에서 부족한 영양을 채우고 계절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다양해졌다. 콩으로 단백질을 확보하고 산과 들에서 얻은 식물을 나물로 먹었으며, 바다의 해조류를 활용했다. 채소를 발효시켜 김치를 만들며 겨울과 춘궁기를 버텼다.
김치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저자는 김치와 피클의 본질적인 차이를 단순히 발효 여부가 아닌 '변화'에서 찾는다. 겉절이에서 덜 익은 김치, 익은 김치, 신김치, 묵은지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한국인은 각각의 단계에 맞춰 김치볶음밥이나 김치찜 등 또 다른 요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밥과 국, 찬이 한 상에 동시에 올라가는 한국 특유의 '공간전개형' 식문화도 분석한다. 구조는 엄격하지만 먹는 방식은 자유롭다. 밥과 국을 합치면 국밥이 되고 밥과 찬을 섞으면 비빔밥이 된다. 밥과 여러 찬을 한입에 조합하면 쌈이 된다.
저자는 비빔밥을 “밥상 위에 펼쳐진 반찬의 세계를 사발 안에 접어 놓은 음식”으로 바라본다. 고기를 먹은 뒤 된장찌개와 밥을 찾고, 전골을 먹은 뒤 남은 국물에 밥을 볶거나 죽을 만들어 먹는 식문화 역시 결국 '밥+국+찬'이라는 기본 구조로 회귀하는 한국인의 식사법이라는 설명이다.
책 후반부에서는 한식 특유의 맛을 결정하는 '간·감칠맛·온도'를 살펴본다. 밥과 국, 찬을 번갈아 먹으며 입안에서 간을 조절하고 여러 식재료에서 나오는 감칠맛을 중첩시키는 것이 한식의 특징이라고 분석한다. 펄펄 끓는 찌개와 얼음이 들어간 냉면처럼 뜨겁거나 차가운 극단적인 온도를 선호하는 이유도 음식의 향과 지방, 점도, 짠맛, 감칠맛의 균형과 연결해 설명한다.
생일날 먹는 미역국처럼 음식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도 다룬다. 미역국은 출산한 어머니와 생일을 맞은 자녀를 연결하고, 가족과 연인 사이의 마음을 표현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미역국을 화려하지 않지만 진심을 담은 음식으로 해석한다.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은 결국 한식의 개별 메뉴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한국인이 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먹게 됐는지, 밥상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와 생활방식을 들여다본다.
홍대선 작가는 철학과 역사를 중심으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탐구해왔다.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1미터 개인의 간격', '한국인의 탄생',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 '행복이 이글이글', '테무진 to the 칸' 등을 썼다. 이번 책 역시 한국인을 총체적이고 통시적으로 이해하려는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1 준우승자인 에드워드 리는 뜨거운 국물을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한국 음식문화의 궁금증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하게 됐다고 추천했다. '흑백요리사' 시즌2에 출연한 '프렌치 파파' 이동준 셰프 역시 프렌치 요리와 다른 한식의 문법, 특히 밥·국·찬이 한 상에 놓이는 이유를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은 매일 마주하지만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한국인의 밥상을 통해 '우리는 왜 이렇게 먹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메디치미디어. 232쪽.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