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전망·내부자료 등 빼내
중국 정보요원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고위 당국자를 포섭하기 위해 연애부터 결혼, 출산까지 돕는 등 사생활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약 10년에 걸쳐 신뢰를 쌓은 뒤 Fed 내부 정보까지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CNBC와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중국 정보요원은 존 해럴드 로저스 전 Fed 선임고문에게 접근해 장기간 친분을 쌓으며 내부 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Fed에서 27년간 근무한 경제학자 로저스는 중국 정보요원에게 Fed 내부 정보를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5년 1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경제 스파이 행위 공모 혐의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수사관에게 허위 진술을 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7월 징역 38개월을 선고받았다.
로저스에게 접근한 중국 정보요원은 '허민 리'라는 이름을 사용한 진촨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3년 중국 상하이 푸단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로저스를 만난 뒤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보내는 등 꾸준히 친분을 쌓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진 계기는 로저스의 연애였다. 로저스는 2016년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를 통해 자신보다 24세 어린 유부녀 류위를 만났고, 이후 류위는 남편과 이혼한 뒤 로저스와 결혼했다.
리는 로저스가 미국에서 류위와 만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중국 대학 강연과 여행 일정을 마련하고 비용을 지원했다. 류위의 이혼 절차부터 로저스와의 결혼식, 딸의 출산까지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로저스는 수사 과정에서 “아기도, 아내와의 관계도 그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리를 “형제처럼 사랑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뢰를 얻은 뒤 리의 요구는 Fed 내부 정보로 옮겨갔다. 그는 중국 금융시장 개방과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Fed의 평가를 묻는 한편, Fed 동료들의 의견을 취합하거나 관련 자료를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로저스는 2018년 'Fed 내부용'이라고 표시된 문서에서 해당 표기를 임의로 삭제한 뒤 리에게 건넸다. 이듬해에는 Fed의 경제 전망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관련 자료를 출력해 중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조사됐다.
로저스는 수사 과정에서 리가 중국 정보요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FBI가 Fed 내부 정보를 외부에 전달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전혀 없다”고 답했지만, 검찰은 이를 허위 진술로 판단했다. 변호인 측은 당시 심한 압박 속에서 나온 답변이었다고 반박했다.
한편 최근 영국에서도 중국 국가안전부와 연계된 위장기관이 인공지능(AI)과 통신 등 첨단기술 확보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되는 등 중국의 해외 정보 활동을 둘러싼 경계가 이어지고 있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