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ITCCK·ST “AI 시대 반도체 경쟁력, 전력·용수·자원 관리가 핵심”

안드레아 베라치(Andrea Verazzi) 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ITCCK) 회장(왼쪽)과 에도아르도 오테리(Edoardo Auter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APAC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총괄
안드레아 베라치(Andrea Verazzi) 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ITCCK) 회장(왼쪽)과 에도아르도 오테리(Edoardo Auter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APAC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총괄

인공지능(AI)이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AI 인프라 확대로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조건도 달라졌다. 첨단 반도체 설계·생산 기술뿐만 아니라 생산에 필요한 전력과 용수, 원자재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 과제로 급부상했다.

이탈리아는 한국처럼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중심 국가다. 이 때문에 자원 회수와 재활용을 산업 경쟁력의 관점에서 오랫동안 발전시켜 왔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T) 역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기반을 둔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전 세계 제조시설에서 에너지 효율과 수자원 관리, 자원 순환, 제품 탄소발자국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자신문은 안드레아 베라치(Andrea Verazzi) 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ITCCK) 회장과 에도아르도 오테리(Edoardo Auter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APAC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총괄(헤드)을 만나 AI 시대에 순환경제와 지속 가능한 제조가 왜 반도체 산업의 과제가 되고 있는지, 유럽의 경험이 한국 반도체 산업과 신규 클러스터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들었다.

안드레아 베라치(Andrea Verazzi) 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ITCCK) 회장
안드레아 베라치(Andrea Verazzi) 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ITCCK) 회장

-최근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산시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전력과 용수, 원자재 확보 문제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순환경제를 오랫동안 추진해 왔는데, 순환경제가 환경 문제를 넘어 산업 경쟁력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배경은 무엇인가.

◇안드레아 베라치(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 회장)=솔직히 말하면, 이탈리아에서 순환경제는 환경 정책에서 출발한 개념이 아니다. 산업적 필요성에서 시작됐다.

이탈리아는 자체 원자재가 거의 없는 가공·제조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금속, 폴리머, 에너지원, 중간재 등을 수입해 이를 고부가가치 제조품으로 전환해 수출한다. 이런 산업 구조에서는 원자재를 회수해 다시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환경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 원자재 가격 변동과 공급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현실적 방법이다.

현재 이탈리아의 순환물질사용률(Circular Material Use Rate)은 21.6%이다. 관리되는 폐기물의 약 86%를 재활용하고 있다. 이는 수십 년에 걸쳐 산업 재활용 인프라를 구축해 온 결과다.

AI 인프라 확대는 이런 문제를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새로운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팹을 구축할 때 자본과 설계 역량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전력과 용수, 인허가, 고순도 화학물질, 구리 같은 물리적 자원을 실제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량 1톤당 에너지 사용량이나 용수 사용량, 수율 같은 지표도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들어가는 숫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기업의 비용과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순환경제는 제조업이 필요한 자원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실제 반도체 제조기업 입장에서 순환경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AI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ST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궁금하다.

◇에도아르도 오테리(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APAC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총괄)=반도체 제조에서 순환성은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소재를 더 오랫동안 생산적으로 이용하고, 운영 전반에서 자원 효율성을 개선하면 배출량을 줄이는 동시에 제조의 회복탄력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ST 역할은 자체 제조시설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빠르게 확대되는 AI 인프라가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경우 전력 변환 효율을 높이는 첨단 전력 관리 및 냉각 솔루션과 컴퓨팅 시스템 간 고속 데이터 전송을 지원하는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 등이 있다. ST의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으로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사용되는 광 커넥티비티를 지원하고 있다.

AI 워크로드가 계속 증가하면서 전력 공급과 데이터 이동 효율성을 함께 높이는 일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ST는 자사 제조 운영의 환경 발자국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차세대 디지털 인프라가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제공한다.

에도아르도 오테리(Edoardo Auter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APAC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총괄(헤드)
에도아르도 오테리(Edoardo Auter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APAC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총괄(헤드)

-ST는 2027년까지 재생가능한 전기에너지 100% 조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 제조시설에서는 에너지와 물 사용을 줄이기 위해 어떤 변화가 이뤄지고 있나.

◇에도아르도 오테리=ST는 재생 가능한 전기 사용량을 늘리는 것과 제조시설 자체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작업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사업장 내 또는 인근 지역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는 한편 제조시설 전반의 에너지 효율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앙모키오 테크노파크가 한 사례입니다. 최근 ST는 이곳에서 싱가포르 최대 규모의 산업용 지역 냉방 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ST 제조시설에 지역 냉방을 적용한 것은 처음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냉방과 관련된 전력 소비량을 20% 줄이고, 탄소 배출량은 연간 최대 12만톤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매년 50만㎥ 이상 물도 재활용한다.

-ST는 2025년 제품탄소발자국(PCF)과 수명주기 평가(LCA) 접근 방식에 대해 ISO 14067:2018 인증을 획득했다. 제품의 원자재부터 제조, 물류, 사용, 폐기에 이르는 환경 데이터를 관리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실제 고객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에도아르도 오테리=ST의 시스템은 원자재와 제조부터 물류, 사용, 수명 종료 단계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전체 수명주기에 걸친 환경 발자국을 보여준다.

이 데이터를 일관되고 감사할 수 있는 방식으로 통합, 고객과 파트너가 관련 정보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비교하며 검증할 수 있도록 한다.

ST의 ISO 14067 인증은 제품 관리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다. 이를 통해 고객은 가치사슬 전반의 환경 영향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고 관련 보고와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다. 에코디자인 과정에서도 환경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앞으로 고객으로부터 이런 데이터를 요구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나.

◇안드레아 베라치=규제에 따른 압력보다 시장에서의 상업적 요구가 더 빨리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유럽의 고객사가 ISO 14067에 따라 제품 탄소발자국을 인증하기 시작하면 일반적인 평균값이나 추정계수에만 의존하기 어려워진다. 공급망을 구성하는 각 협력업체로부터 검증할 수 있는 실제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하는 기업이 당장 특정 규제 때문에 시장에서 배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먼저 고객사의 견적요청(RFQ)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머지않아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지 않는 데 따르는 비용이, 측정하고 검증하는 비용보다 더 커질 수 있다.

한국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에는 이것이 하나의 경쟁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가격만으로 장기적인 경쟁우위를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객관적으로 검증된 환경 성과는 공급기업을 차별화할 수 있어서다.

다만 이를 실제 글로벌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면 한국에서 받은 인증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ISO 기반 국제표준을 적용하고 국가 간 상호인정이 가능한 검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드레아 베라치(Andrea Verazzi) 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ITCCK) 회장과 에도아르도 오테리(Edoardo Auter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APAC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총괄(헤드)
안드레아 베라치(Andrea Verazzi) 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ITCCK) 회장과 에도아르도 오테리(Edoardo Auter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APAC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총괄(헤드)

-한국에서는 용인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전력과 용수 공급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데, 유럽의 경험에서 한국이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안드레아 베라치=물을 개별 공장의 유틸리티가 아니라 클러스터 전체의 공동 인프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탈리아 산업지구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컨소시엄 방식의 공동 용수 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하나의 공동 시설에서 공정용수를 처리하고 회수한 뒤 여러 기업에 다시 공급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도 개별 팹이 각각 용수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 팹과 서브팹(subfab), 같은 지역에 위치한 AI 데이터센터까지 아우르는 중앙집중형 초순수·재이용수 시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의 품질에 따라 단계적으로 재사용하는 '품질 캐스케이드(Quality Cascade)' 방식도 활용할 수 있다. 가장 높은 등급의 초순수는 노광과 세정 공정에 사용하고, 1차 세정수는 회수해 스크러버나 냉각탑에 다시 사용하며, 최종 처리수 역시 산업용수나 조경용수 등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산업 공생(Industrial Symbiosis)을 클러스터 설계 단계부터 고려하는 것이다. 용제와 이소프로필알코올(IPA) 회수, 폐산 재생, 금속 회수, 슬러리 재생 등을 클러스터 내부의 자원 순환 구조에 포함할 수 있다.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폐열도 자원이다. 이를 회수해 인근 지역난방 등에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ST의 글로벌 제조 경험에서 볼 때 한국의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에도아르도 오테리=반도체 클러스터에서는 물과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을 초기 단계부터 계획해야 한다.

특히 프론트엔드 반도체 제조에는 대량의 초순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ST는 물을 전략적 자원으로 보고 있다.

세계 제조시설에서 축적한 경험에 따르면 장기적인 회복탄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유틸리티 인프라와 충분한 물 재활용 역량, 그리고 안정적인 청정 전력 공급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러한 요소를 클러스터 설계 단계부터 고려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반도체 제조 기반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ST 8kW AI 서버용 전력공급장치(PSU) 레퍼런스 디자인
ST 8kW AI 서버용 전력공급장치(PSU) 레퍼런스 디자인

-마지막으로 한국과 이탈리아의 반도체·첨단산업 협력에서 ITCCK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안드레아 베라치=한국과 이탈리아 산업은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유럽이 쉽게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의 제조 규모와 산업 클러스터 구축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탈리아는 수처리, 공정 자원 회수, 에너지 효율, 산업 자동화 분야에서 전문적인 엔지니어링 기업들이 촘촘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ITCCK는 이탈리아의 공정·수처리 기술 기업들을 한국의 주요 산업 클러스터와 연결하는 한편, 한국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이탈리아와 유럽의 산업 현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양방향 교류를 확대할 수 있다.

또한 CBAM, 지속가능성 공시, 디지털 제품 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 ISO 14067 인증 등 유럽의 규제 및 인증 체계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기업들의 대응을 지원할 수 있다.

양국 엔지니어링 문화도 상당히 상호보완적이다. 한국은 속도와 규모로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강점이 있다. 반면 이탈리아는 이미 구축된 공정에서 마지막 1%의 효율까지 끌어올리는 정교한 최적화 역량을 갖췄다.

지속가능성은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산업의 특성이 경쟁하기보다 서로의 강점을 보완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누가 가장 뛰어난 반도체를 설계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30년 동안 그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전력과 용수, 원자재를 누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게 공급할 수 있느냐 역시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순환경제는 AI 시대에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추가적인 비용이라기보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이자 조건이다.

※용어설명

순환경제(Circular Economy)=제품과 자원을 한 번 쓰고 버리지 않고 가능한 오래, 높은 가치로 사용한 뒤 회수·재사용·수리·재제조·재활용하는 경제 체계. 제품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내구성, 수리 가능성, 부품 교체, 분해 용이성, 재활용성까지 고려한다.

폐기물을 처리 대상이 아니라 설계와 운영으로 줄여야 할 자원 손실로 보기 때문에, 폐기물을 단순 분리 배출해 재활용하는 것보다 넓은 개념이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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