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티 추정치 54조원…시장 규모 변화로 계산
손실 규모 넘어 정책 문제 놓고 책임 공방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투자 손실 규모를 놓고 금융당국과 국민의힘이 충돌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확정 손실은 약 2조3000억원인 반면, 국민의힘은 해외 투자은행(IB) 씨티의 분석을 근거로 약 54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두 수치는 23배 이상 차이가 나지만, 집계 대상과 산정 방식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도입 경위와 투자자 보호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상품 도입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의 책임을 추궁했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잘되면 정책의 공로이고, 안되면 투자자 개인의 책임이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청와대 지시로 상품을 도입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도입 근거는 시행령 개정이고 시행령 개정은 금융위 소관”이라며 “여러 의견을 듣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허용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국내에서도 출시해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가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위원장은 상품 도입 이후 투자 손실과 증시 변동성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진 데 대해서는 사과했다. 그는 “정책 도입의 필요성과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여러 손실과 우려, 피해를 드린 데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관련 상황을 세심하게 계속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손실 규모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산정 기준이다. 금감원이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10곳에서 개인투자자가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출시일인 5월 27일부터 8월 14일까지 확정한 매매손실은 2조3242억원이다.
이 수치는 투자자가 상품을 매도해 확정한 손실을 집계한 것이다. 100만원에 매입한 상품을 70만원에 팔았다면 30만원이 실현손실에 해당한다. 반면 상품을 보유한 상태에서 가격이 하락해 발생한 평가손실은 포함되지 않는다. 집계 기간 이후의 손실과 조사 대상 증권사 이외의 거래도 반영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제시한 약 54조원은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의 시장 규모 분석을 바탕으로 한 추정치다. 씨티 분석에 따르면 한국 자산을 기초로 한 레버리지 ETF의 시가총액은 6월 22일 약 525억달러에서 한 달여 만에 약 190억달러로 감소했다. 씨티는 이 기간의 신규 자금 유입 등을 고려해 투자 손실을 약 387억달러로 추산했다.
그러나 이 수치를 국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투자한 개인들의 손실로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씨티 분석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관련 상품뿐 아니라 코스피200 추종 레버리지 상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장도 해당 추정치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씨티 자료가 회사의 공식 리서치 보고서가 아니라 트레이딩 부문에서 작성한 비공식 시장 논평이라며 “실제 내용도 정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달러 기준 추정치를 원화로 환산한 금액인 만큼 환율에 따라서도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두 수치는 서로 다른 범위를 측정한다. 금감원의 2조3000억원은 특정 기간 국내 증권사 10곳에서 개인투자자가 확정한 손실이고, 씨티의 54조원은 더 넓은 범위의 레버리지 상품 시장 변화를 토대로 산출한 추정치다. 어느 한쪽의 수치만으로 전체 투자자의 손실을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투자자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상품과 투자자 범위, 집계 기간을 통일하고 실현손실과 평가손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손실 규모에 대한 논쟁과 별개로 상품 도입의 정책적 책임과 투자자 보호 대책을 둘러싼 공방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