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붉은 깃발 법` 결코 남일이 아니다

[기자수첩] `붉은 깃발 법` 결코 남일이 아니다

영국에는 유명한 자동차 회사가 없다. 세계 곳곳에서 독일,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 자동차는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영국은 존재감이 없다. 산업혁명의 메카 영국에서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아직도 많은 이에게 조롱받는 ‘붉은 깃발 법(Red Flag Act)’ 때문이다.

이 법은 자동차의 속도를 시속 6㎞로 제한했다. 시내에서는 3㎞ 이하로 떨어뜨렸다. 자동차에는 최저 세 명 이상이 탑승해야 하고 그 중 한 명이 붉은 깃발을 들고 앞서나가 자동차의 접근을 알려야 했다. 법안은 영국인의 자동차 구매 욕구를 떨어뜨렸고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결국 도태됐다. 자동차 엔진을 최초로 개발했고 처음으로 상용차를 시판했던 영국이지만 결국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미국과 독일로 넘어갔다. 사양 산업인 마차를 수호하기 위한 과도한 규제와 혁신의 몰이해 결과다.

혁신은 항상 진통을 동반한다. 기존 법이나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혁신은 애초에 싹이 잘려나가는 게 부지기수다. 미국 뉴저지 주 정부의 테슬라 자동차 직판 금지조치나 서울시와 우버의 갈등은 모두 같은 맥락이다.

혁신적인 산업이 제대로 육성되려면 구제도나 선입견을 벗어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은 기존 산업 구조를 벗어나 항상 혁신하려는 도전이다. 기존에 없던 방식을 취하려다보니 계속해서 현행법과의 충돌을 일삼는 게 다반사다. 집에서 모여 함께 밥을 먹자는 취지였던 ‘집밥’은 식품위생법에 저촉돼 식당에 모여 밥을 먹는 콘셉트로 바뀌었다. 남는 주차장을 공유해 필요한 사람이 사용하게 하자는 주차장 앱도 몇몇 지자체의 규제에 부딪혔다.

아이디어는 빠르게 진화하는 것에 반해 기존 법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신성장 먹거리를 육성하려면 신사업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이나 규제보다는 진흥과 육성을 위한 숨통을 어느 정도 틔워주는 편이 바람직하다.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영국 자동차 산업의 발목을 잡았다고 평가받는 붉은 깃발 법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