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63> 타이밍 딜레마(Timing dilemma)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lt;63&gt; 타이밍 딜레마(Timing dilemma)

흥망성쇠가 잦은 중국 역사에서 의외로 개혁 사례는 많지 않다. 굳이 꼽으라면 가까이로는 청나라 광서제의 무술변법과 멀리 송나라 신종의 신법이 있다. 1898년 6월 광서제는 '정국시조'를 반포한다. 그러나 이 무술변법은 103일로 단명한다. 광서제는 퇴위 당하고 측근들은 처형되는 것으로 끝난다. 왕안석의 신법도 비슷한 결말이다. 후원자이던 신종이 38세로 죽고 10세의 철종이 즉위하면서 고태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신법을 추진한 신당파는 해임되고 수구파가 재집권하는 것으로 15년의 노력은 성과 없이 끝난다.

개척자가 되는 것은 지극히 매력적이다. 기술 혁신이나 새 제품도 마찬가지다. 위험이 따르지만 보상도 크다. 반면에 후발 주자는 위험은 적지만 자칫 수익이 남지 않기도 한다.

사례는 상반된다. 1867년 크리스토퍼 숄스는 QWERTY 자판을 소개한다. 이즈음 타자기는 키가 엉키는 문제가 있었다. 해결책은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다. 자주 쓰는 키는 가능한 넓게 배치했다. 효율성은 낮았다. 왼손에 부담이 됐다. 왼손만으로 10배나 많은 단어를 칠 수 있지만 오른손은 별반 할 일이 없을 때도 많다. 오거스트 드보락은 이 비효율성에 주목했다. 자주 쓰는 모음과 자음을 가운데에 배치했다. 양쪽 손이 번갈아 치도록 했다. 문제는 대부분 사용자가 QWERTY 배열에 익숙해 있었다는 것이다. 키가 꼬이는 문제는 1981년 키를 원주형으로 배치한 데이지휠이 나오면서 잦아든다. 컴퓨터에서는 아예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문제가 사라진 후에도 QWERTY 자판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맥도넬 더글러스의 DC-10기와 록히드의 L-1011 트라이스타는 모두 당대 최신기였다. 장거리 운항이 가능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을 시작했지만 DC-10이 1971년에 1년 앞서 선보인다. DC-10은 설계 결함이 있었다. 몇 차례 사고 원인이 된다. 20년 동안 DC-10은 441대 팔렸지만 트라이스타는 242대에 그친다. 1974년과 1979년의 대형 참사에도 1년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이 사례는 열등한 제품이 우월한 제품을 이긴 대표 사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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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대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50개 제품을 다룬 한 연구에서 시장 개척자 실패율은 47%나 되지만 시장점유율은 평균 10%에 불과했다. 8㎜ 비디오카메라, 일회용 기저귀, 마이크로웨이브, 개인용 컴퓨터(PC), VCR, 비디오 게임기, 워크스테이션 모두 최초 진입자는 승자가 되지 못했다.

어떤 선택이 좋을까. 바람직한 선택 기준은 없을까.

로널드 클링게비엘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교수와 존 조지프 UC어바인대 교수는 성공이 단순히 최초 진입과 후발자란 선택의 결과물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성공은 다른 네 가지에 의해 정해졌다. 첫째는 구체성(scope)이다. 성공한 후발자는 비록 혁신성은 작지만 구체적 목표를 성공시키고 있었다. 2006년 휴렛팩커드(HP)는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기능은 비슷했다. 기존 제품보다 못한 몇몇 기능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반면에 사젬(Sagem)은 영상통화와 다중 주파수 호환에 주목한다. 사젬의 수익률은 HP의 두 배나 됐다. 둘째는 신중한 선택(due diligence)이다. 선도자는 완성도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반대로 후발 브랜드는 따져야 할 것이 많다. 전략은 반대다. 빨리 결정하는 대신 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셋째는 혁신 방식(commitment)이다. 선도자는 개발 자체에 집중한다.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다. 후발자는 다르다. 선도자의 실수를 바라보는 이점이 있다. 그 대신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넷째는 인센티브(incentive)다. 선도자에게 성공 보상 방식은 이상적이다. 정작 후발 기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제품 개발 자체보다 성능 발휘가 중요하다. 인센티브 방식도 달라야 한다.
선도자의 이익은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반대로 최초 진입이 만들어 낸 연쇄 반응은 열등한 기술과 제품에 충분한 경쟁 우위를 만들기도 한다. 혁신 전략과 타이밍, 두 가지가 맞아야 한다. 자칫 하나만 생각하면 함정에 빠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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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