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의 블랙박스]<21>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정부 콘텐츠 지원 사업

실패를 찬양하는 명언은 많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흔히 듣는 이야기다. “천재는 99% 노력과 1%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에디슨의 유명한 말이다. 또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한다. '해군이 아니라 해적이 되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는 말들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는 반대로 그만큼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말이 된다. 인간은 적자생존과 후손증식에 대한 본능적 추구가 있어 가능하면 위험을 회피하려고 한다.

위험과 실패를 지극히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안전망'이나 사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정부 지원 사업의 본질이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
위정현 중앙대 교수

그동안 정부 콘텐츠 지원 사업은 이와 정반대로 가는 것 같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으면 배제하는 것. 한 마디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얼마 전 만난 콘텐츠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은 나에게 이렇게 한탄했다.

“정부 지원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성공하고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방식 같네요.”

이유를 묻자,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는데 투자금을 유치하는데 시간이 걸려 정부 지원금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리원칙대로 한다면 정부지원금을 사용해 좋은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기반으로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과정이 반대로 간 것이다. 즉 투자를 유치해 온 기업에 정부 지원금을 주는 형태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정부가 민간 콘텐츠 사업을 지원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이 높이 평가한 기업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공한 기업이나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정부 역할이 아니다. 카카오나 네이버가 투자한 벤처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지금 한국 콘텐츠 산업 생태계는 망가져 있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경우 그 심각함은 도를 넘은 상태다.

중소개발사 대표가 전화해 오면 작별인사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생태계에 개입해야 하는가는 중대한 문제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고 있지만 아무도 그 앞길을 알지 못한다. 인류 역사상 전대 미문의 새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을 빌자면 해군보다는 해적이 더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길이라면 우리도 세계 콘텐츠 바다를 누빌 수 있는 수많은 해적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양으로 떠나게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정부 지원 사업이 해적은 커녕 해군도 아니고, 흔히 멍텅구리배로 불리는 새우잡이 통통배만 양산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교수 jhwi@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