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코로나19 검진에 '사내 의료진' 투입하자"

선별진료소 요건 한시적 완화
전자업계, 정부에 건의서 전달
최전선 배치된 의료인력 활용
신속한 대응체계로 피해 최소화

지난달 28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1조 근무자들이 마스크를 쓴 채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1조 근무자들이 마스크를 쓴 채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이 자체 보유한 의료진을 코로나19 검진에 적극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국가 방역 체계가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산업 최전선에 배치된 의료 인력을 이용해 신속한 대응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초기 진단이나 방역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여 생산 라인 폐쇄 등 코로나19로 인한 산업 현장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가 차원에서 가용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까지 확대할 수 있는 1석2조 활용책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만 수백개에 달해 실제 실행한다면 산업 현장의 위기 대응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는 기업이 보유한 '사내 의료진'이 검체 채취 등 코로나19 검진에 기여해 신속검진 체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의 전자업계 건의서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고 2일 밝혔다.

건의서는 사업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경우는 물론 의심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산 라인 폐쇄 등 산업 현장에 큰 피해를 초래하는 만큼 사내 의료진을 동원, 신속검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산업계는 산업안전보건법 기준에 따라 사업장에 사내 의료진(보건관리자)을 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국 사업장에 의사·간호사 포함 수십명의 사내 의료진을 갖췄고, LG전자도 전국 사업장에 10명 넘는 의료진을 보유했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국 3214개 사업장(건설업 제외)이 자체 보건관리자를 선임했고, 그 가운데 2인 이상 사내 의료진을 둔 곳도 333개 사업장에 달했다.

문제는 사내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진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가 정한 '선별진료소'에서만 검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선별진료소는 2일 현재 582곳이며, 검체 채취 가능 진료소는 518곳이다. 정부는 자격과 규모, 확산 방지 여건 등을 종합 고려해 선별진료소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감염병 병원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관은 △질병관리본부 △국립검역소 △보건환경연구원 △보건소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가 상근하는 기관 등으로 한정된다. 사내의료진은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

산업계는 사내 의료진이 검체를 채취할 수 있도록 선별진료소 요건을 한시 완화해 달라고 건의했다. 또 검체 키트를 일정 기준을 갖춘 사내 의료진에 제공하고, 이 키트를 전문 기관이 빠르게 검사할 수 있는 '신속검진체계'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의심 환자를 조기 진단해 코로나19 확산을 막아 사업장 폐쇄, 연구개발(R&D) 활동 전면 중단 등의 국가 경제 피해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LG이노텍은 구미1공장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카메라 모듈 생산 라인을 이틀 동안 폐쇄했다. LG디스플레이는 구미사업장 복지동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일부 모듈 생산 시설을 폐쇄하고 방역을 실시했다. 삼성전자 구미2사업장은 확진자가 2명 발생, 생산 라인 가동을 두 차례 멈춰야 했다.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도 확진자 발생으로 가동 중단 사태를 겪었다. 국가 중추 사업장이 며칠씩 가동을 중단하면서 피해 규모는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증상이 있는 직원이 검사를 받고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많은 시일이 소요되며, 이 과정에서 직장 내외부에 추가 감염 위험마저 있다”면서 “규모와 자격을 갖춘 사내 의료진을 적극 활용한다면 코로나19로 인한 산업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