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주목되는 인텔과 삼성전자의 오월동주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이 새해 초 위탁생산(파운드리) 계획을 발표한다. 계속된 7나노미터(㎚) 공정 지연에 따라 아웃소싱을 검토해온 인텔의 선택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인텔은 그간 최고경영자(CEO)까지 나서 외부 파운드리 이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다, 경쟁사가 7나노 이하 미세 공정에 전환한 터라 외부 파운드리 업체와의 협력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밥 스완 인텔 최고경영자(CEO)<사진=인텔>
밥 스완 인텔 최고경영자(CEO)<사진=인텔>

인텔이 자사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외부 파운드리에서 생산한다면 세계 반도체 산업은 또 다른 변곡점에 들어설 전망이다. 인텔은 설계부터 제조, 판매까지 반도체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자체 소화하며 성장한 종합반도체(IDM) 기업이다. 제조는 인텔 CPU가 세계 최고 성능을 낼 수 있게 한 핵심이었다. 하지만 외계인이 근무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낳을 정도로 기술력을 뽐내 온 인텔의 위탁생산은 인텔 사업 구조 변화뿐만 아니라 세계 반도체 산업에 팹리스와 파운드리 분업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자료=삼성전자>
반도체 산업 생태계<자료=삼성전자>

관심은 인텔이 어디에 반도체 생산을 맡기느냐에 쏠린다. 후보지는 명확하다. 인텔이 필요로 하는 7나노 이하 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 두 곳뿐이다. 양사는 이미 7나노를 넘어 5나노 양산에 성공했으며, 2022년 3나노 공정 도입을 준비하는 등 미래 반도체 공정에서 앞서가고 있다. 인텔이 반도체 외주 생산을 추진하면 TSMC와 삼성전자와의 협력이 오히려 필수로 손꼽힌다.

그러나 냉정히 평가할 때 인텔은 TSMC를 우선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TSMC는 시장 점유율 50%가 넘는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다. 기술력, 양산 능력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양질의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곳을 마다할 회사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 TSMC는 파운드리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Pure Foundry)인 반면에 삼성전자는 직접 시스템 반도체도 만들고 있다. 2030년 1위 달성을 목표로 내걸 만큼 시스템 반도체 육성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인텔이 잠재적 경쟁사이자 미래의 적이 될지 모를 삼성에 설계도를 넘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삼성전자도 이런 우려 때문에 2017년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하며 시장의 신뢰를 쌓으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TSMC와 삼성전자에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생산을 함께 맡기던 애플이 TSMC로 전량 주문을 옮겼듯이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아직 넘어야 할 한계가 남아 있는 모습이다.

TSMC 사옥 전경<사진=TSMC>
TSMC 사옥 전경<사진=TSMC>

그렇다면 인텔과 삼성전자의 협력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인텔은 애플이라는 대형 고객사가 이탈하고 있다. 애플이 맥 컴퓨터에 자체 개발한 CPU를 탑재키로 하면서 인텔은 애플을 대신할 고객사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이런 인텔에 대안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 PC 사업은 스마트폰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 하드웨어 기술과 '삼성'이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경제 활동으로 '1인 1 노트북' 시대가 전망되는 등 PC 시장 성장도 점쳐진다. 인텔과 삼성전자가 새로운 PC 시대를 내다보고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는다면 인텔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협력도 기대를 걸 수 있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도 같은 배를 탄다고 했다. 경쟁관계에 있어도 이해가 맞으면 함께 뭉친다. 퀄컴은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통해 AP를 생산하고,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AP를 판매하고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인텔과 삼성전자의 오월동주를 그려본다.

삼성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인 삼성 오스틴 반도체 전경<사진=삼성전자>
삼성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인 삼성 오스틴 반도체 전경<사진=삼성전자>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