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필름컨덴서 연구조합" 설립일 1982년 1월 11일.
이사장차준덕 C&S상사 대표이사.
주소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245-2 정연빌딩 303호.
89년이후 연구실적 전무.
해산일미정.
산업기술연구조합설립의 근거가 된 법률이 제정된 것은 72년이었다.
72년12월 28일 법률 제2399호로 제정되고 77년 12월 31일 법률 제3095호로 개정된 기술개발 촉진법 제10조의 3이 바로 그것이다.
법이제정 되고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제1호 연구 조합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당시 업계의 상황이 정부정책을 따라갈 만한 수준이 못됐다는 결과론을 낳는다.
어쨌든과학기술처 산하 특수법인인 산업기술연구조합 제1호의 탄생은 5공정 부 출범이후의 연구조합 활성화 정책에 따른 한국필름컨덴서연구조합의 설립 에 의해서였다.
바꾸어말하면 한국의 산업군들 중에서 필름컨덴서업계가 공동연구개발에 가장 먼저 눈뜬 결과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필름컨덴서연구조합의모태가 된 것은 마일러필름컨덴서협의회였다. 당시 협의회의 회장을 맡고 있던 C&S상사를 중심으로 서진전자.진영전자.신성 무역 .한국신영.선일전자등 협의회 회원사들이 주축이 됐다.
친목단체의수준에 머물러 있던 협의회보다는 "힘없는 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필요한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해 보자"는 것이 연구조합설립의 근본취지였다.
정부의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동개발에 따른 인력절감, 금검 감효과도 크게 기대했다.
그러나C&S상사 차준덕사장과 서진전자 이진홍 사장의 적극적인 가입권유에 도 불구하고 업체의 참가율은 저조해 결국 4개 조합원사를 거느린 소 조합으로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초기에 관심을 보였던 한국 신영.선일 전자는 곧연구조합을 탈퇴했다.
컨덴서업계의각종 단체.모임.협의회등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붙어 다니는 성문공업 대아리드선, 삼아알미늄등 원자재공급업체들이 후일 회원사로 합세 했지만 컨덴서 생산업체로서 늘어난 회원사는 90년 연구 조합 사무실이 사라질 때까지 동국전자 1개사에 불과했다.
필름컨덴서연구조합이초기부터 대다수 업체들로부터 외면 받은 이유로 가장 흔히 거론되는 것은 특정업체 중심의 연구개발, 즉 공동 이익과는 거리가 먼 편중된 프로젝트운영을 들 수 있다.
초기에참여를 희망했다가 탈퇴한 K사 L사장은 "각사의 공장 시설을 서로 공개하자 는 제안에 일부업체가 반발, 탈퇴했다고 전한다. 연구 조합에 사시를 보이는 업체들은 대부분 "특정업체의 들러리가 되기 싫었다"고 말한다.
결과론적인이야기지만 결국 연구조합의 탄생은 필름컨덴서업계의 불화를 더욱 재촉한 셈이 됐다. 마일러컨덴서협의회와 필름컨덴서 연구조합의 양대 기구 대표를 맡게 된 차사장은 연구조합에 주력할 수 밖에 없었고 유일한 "친 목단체"였던 협의회마저도 흐지부지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연구조합 주축멤버들의 기술개발 의욕만큼은 남달랐다.
특히주도멤버인 C&S상사와 서진전자.진영전자는 매년 한 건 이상의 공동연구실적을 올리며 제1호 연구조합으로서의 체면을 세워 나갔다.
그중에서도83년 과학기술진흥 확대회의에서 우수개발 상품으로 추천돼 전대 통령의 하사금을 곁들인 표창(수상자 김정? 당시 사무국장, 현 세일전자 대표 까지 수상한 MF컨덴서 래핑머신은 필름컨덴서연구조합의 최대성과로 꼽히고 있다.<최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