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경쟁력을 살리자(4)

지난 92년에 우리나라 정부및 기업.대학등 연구기관이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총 63억달러.

1천5백억달러를상회하는 미국의 25분의 1수준이고 일본에 비해서는 약 15분 의 1 정도다.

63억달러가과연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알아본다면 이같은 국가간 비교는 거의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최대의 자동차메이커인 GM의 연간 R&D투자비가 59억달러, 독일 최대의전기. 전자 관련그룹인 지멘스가 53억달러, 미국 컴퓨터메이커인 IBM이 51억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비교해보면 국내 전체R&D투자는 외국의 1개 세계적 기업과 거의 비슷한 수준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기업들도연구개발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히타치 가 연간 39억달러를 R&D에 쏟아붓고 있으며 도요타가 35억달러, 마쓰시타도31억달러를 순수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가5.8억달러, 현대자동차가 3.2억달러, 금성사가 2.9억달러로서 국내전체기업의 R&D투자순위에서 각각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좋은비교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이렇게 적은 투자에 비해 여기에 거는 기대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우리나라는GNP의 3%라는 엄청난 돈을 쓰면서 과학기술이 국내 산업의 경쟁 력을 강화하는데 얼마만큼 기여했는가에 대한 질책과 함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육성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정책입안자 및 정치가들사이 에서 나오고 있는게 현실이다.

"우리기업 및 사회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기술은 기술발전의 속도가 더해지면서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원이 크게 부족해 이같은 과제 를 수행한다는 것은 물론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업마저도 지원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 과기처 관계자의 이야기다.

우리정부 및 기업들은 이처럼 턱없이 적은 금액을 투자하고서도 거기에 거는 기대는 엄청나게 큰 망상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적은 액수를 R&D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적은 R&D비용으로 최대의 효과 를 거둘 수 있도록 배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게 당연하다.

최근과학기술관련 정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행정 체제 를 갖추어야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은 투자의 효율적인 배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특히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지원은 부처 별 중복문제에서 비롯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에 대한 투자의 비효율성과 함께연구개발자금지원제도의 파행적인 운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있다는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실제정부 출연연구기관들에 대한 지원은 상공.체신.과기처등 기술개발 관계부처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식 토론을 거쳐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이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실제 연구를 수행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나 기업들의 의사반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정부의 기술개발지원자금이 나눠먹기식으로 배분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기업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생각입니다. 기술개발자금이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 편중되고 일부 힘있는 단체 및 연구기관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상은 공업기반기술 개발사업 및 특정연구개발사업 등의 사업주체가 몇년간 계속해 서 정부의 자금수혜자가 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유사단체 들이 난립하는 현상도 바로 나눠먹기식으로 배분되는 정부의 기술개발자금의 한 몫을 차지하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됐다고 보면 됩니다".

정보산업관련단체에근무하고 있는 한 관계자의 지적이다.

올해출연연구 기관들중 일부가 자체적으로 독자적인 연구개발프로그램을 수립해 정부로부터 직접 연구개발에 소요되는 자금을 지원받게 된 것은 이처럼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정부의 기술개발지원제도하에서 그나마 필요한 기술에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지원해 줄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기술 개발자금이 이처럼 뚜렷한 목표없이 난맥상을 보이며 투자 되고있는 반면에 기업들의 연구개발투자는 실질적으로 당장의 상품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투자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나기업들의 연구개발투자는 기반기술이라기 보다는 상품화기술에 집중 돼 또다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즉제품생산기술에 주력함으로써 원천기술 및 기반기술에 상대적으로 소홀할수밖에 없다는 것.

결국기업들은 기반기술 및 원천기술을 해외에서 도입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따라 값비싼 로열티를 외국기업에 고스란히 내주어야 하는게 현실이다.

장기적인목표를 수립하고 이에따른 기술개발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기업 의 한계라고 한다면 그 빈자리는 정부출연기관 및 대학이 채워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업연구소가상품화기술을, 정부출연연구소가 기초 및 원천기술을 담당해야 한다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정부출연연구기관 및 대학연구소가 개발한 기술의 실질적인 수혜자가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같은 등식은 사실상 성립되지 않는다고 볼 수있다. 일본이 향후 10년 및 20년을 지향하는 장기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정부만이 아닌 산.학.연 공동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업이 연구비의 절대액을 지원하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최근정부가 앞장서 주장하고 있는 산.학.연 공동연구체제의 구축은 바로 이같은 이같은 이유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실제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는 새로 추진하고 있는 모든 프로 젝트에서우선지원순위의 맨 윗자리에 산.학.연공동체제를 올려놓고 있다.

기업및 연구소의 독자적인 프로젝트보다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목표로 산.학.연연합체제에 대해 사실상 특혜를 베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정부의 이같은 방침도 현재로서는 커다란 효과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게 관계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산.학.연공동체제의구축은 각각의 연구주체가 안고 있는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처방전이나 실제 개발목표가 당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단기적인 목표로 제품의 경쟁력강화에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같이 기업들의 연구능력 및 투자여력이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에 비해 우수할 경우 상대적으로 공동프로젝트의 방향은 기업의 입김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에따라 원천기술.기반기술의 확보는 정부의 프로 젝트나 출연연구 기관의 프로젝트등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한정된투자재원을 갖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 에서 기술개발을 위한 정부의 각종 지원조치도 사실상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현재 정부가 중소기업들의 기술개발을 촉진키 위해 저금리로 지원하고 있다는 연6~7%의 기술혁신자금도 일반금융기관과는 달리 추가비용이 엄청 나게소요돼 실제적으로는 연간 원금의 14%의 금리를 물어야하기 때문에 중소기 업들의 자금이용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정부의 특별자금도 몇몇 담보를 제공하거나 회수가능성이 높은 일부 유망 중소업체에 한정돼 지급됨에 따라 대부분의 중소기업 및 투자위험이 큰 벤처 기업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신경제1백일 계획이 시행되면서 중소기업 기술개발 및 시설 자금으로 1조2천억원의 자금이 풀렸지만 이 돈 역시 담보가 튼튼한 일부 중소업체들에 게 집중지원되는 현상을 빚었던 것은 현재의 기술개발지원제도가 얼마나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자원도충분치 못하고 그것마저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정부출연기관 및 기업연구소, 대학 등의 연구개발활동은 창의적이라기 보다는 손쉬운 개량.복제기술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문제는 이렇게 해서 개발된 기술마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국내에서개발된 기술이 국내기업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여기에 외국기업들 의 무차별한 덤핑공세 등으로 그대로 사장되는 경우가 비일 비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실정에 맞는 공장자동화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모 기업의 사장이 겪은 애환은 중소기업들의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입증 해 준다.

"국내실정에 맞는 공장자동화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지만 아무도 우리의 제품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을 닫고 일본 전문기업에서 5년여를 근무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기능을 대폭 보강한 제품을 개발, 외국제품에 비해 절반이하의 가격으로 공급했지만 외면하는 것은 이전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에는제품의 성능이 아닌 친인척관계를 통해 한 곳에 납품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제품의 성능을 인정받아 이제는 이 분야에서는 그나마 인정받는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기술만가지고는 인정받을 수 없는 우리의 상황이 중소기업들이 기술 개발을 통해 자생력을 갖추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한정된자원, 나눠먹기식 정부의 기술개발자금지원, 상품화기술에 치우친 기술개발 방향, 그리고 개발된 기술에 대한 외면 등이 우리의 기술개발 투자에 대한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양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