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초 금성 알프스는 일본 알프스에서 컬러 TV용 튜너 설계기술을 도입, 국내 처음으로 컬러용 튜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70년대 전반기 튜너를 비롯, 인쇄회로기판(PCB).콘덴서.고압변성기(FBT) 등 각종 전자부품의 생산기술이 거의 일본으로부터 유입되거나 전수되는 시기였으며 일본.미국등 선진국 전기.전자업체들이 해외생산기지로 한국을 제일로 꼽고 있었다.
한국은 비교적 교육수준이 높고 노동력이 풍부할 뿐 아니라 당시 임금 수준 또한 대만.홍콩등 동남아지역 보다 낮았기 때문에 일본 업체들의 해외생산기 지화에 적지였다.
일본업체들이 한국으로의 기술 이전 내용도 업체와 품목에 따라 달랐는데 콘덴서. PCB등 단순 전문업체들이 기술제휴내지 합작사를 설립,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경우는 기술 이전이 비교적 수월했던 반면 금성.삼성과 같이 TV.라디 오등 세트 제품을 생산하는 종합 부품업체들에게는 일본 업체들의 견제 대상 으로 기술 이전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성 알프스와 삼성산요전기 초창기 멤버들은 수단 방법을가리지 않고 선진 기술을 빼와야 했으며 양산제품의 안정화와 함께 신제품 개발이라는 양대과제를 놓고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된다.
이들 업체가 수시로 파견한 연수단은 선진업체의 생산라인을 몰래 보고와 국내에 접목시키기도 하고 일본인 고급 기술자들을 귀가시간에 만나 설득 하는가 하면 위장 시찰단을 구성, 생산구조와 신제품 개발동향등을 파악 하는 등불모지에서 터잡기에 안간힘을 썼다.
특히 납땜용 납에서부터 납땜공구, 각종 소재와 생산장비들이 모두 일본으로 부터 들여와야 했기 때문에 일본 업체들의 신경을 건드리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까 마음 조이며 기술이전을 추진해온 지난 날들이 지금은 국내 전자산업 발전에 한몫했다는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같이 노력한 결과 금성알프스는 14~83채널의 UHF튜너를 74년 11월 개발한 데 이어 75년 초들어 기능을 단순화시킨 염가형 제품(일명 새마을 튜너) 을개발 출시해 80년 7월까지 생산, 5년 이상 줄곧 생산했던 장수품목 중의 하나이다. 삼성산요 전기도 일본 산요로부터 기술을 지원받아 지금은 중국에서 전량 생산 국내에서 신뢰성 검사로 출고하는 기구식 메카 튜너를 74년 연간 4만대( 키트)규모로 생산에 나선다.
73년부터 국내에서는 금성사와 삼성산요전기가 TV 생산량을 늘리고 있었으며동남샤프.천우사.한국 테레비.천일사.남성크라운등 TV 전문 생산업체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튜너시장이 본궤도에 오른다.
상공부는 68년 12월 28일 전자공업 진흥법을 제정 공포한 이후 실질적인 전자 산업발전을 위해 74년부터 81년까지 수정된 전자공업 진흥 8개년 계획을 수립,수출 주도형산업으로 적극 육성시킨다.
이당시 금성사를 중심으로 한 전자업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시책에 힘입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신제품을 출시했는데 금성사는 디지털 라디오를 개발, 사용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라디오.텔레비전.카 세트등 3개 제품이 복합된 "라테카"도 개발, 국내 가전시장을 장악하는 도약 대를 마련한다.
또 금성사가 73년 5월 개발한 카세트 녹음기인 RE-501는 음악 애호가들의 음악 녹음용으로 뿐 아니라 자료 수집 보관과 언론기관 기자들의 취재용으로 인기가 높았으며, 손을 대면 날개가 정지되는 선풍기와 슬리핑 타이머 기능 의 선풍기도 요즘같이 찌는듯한 여름밤의 무더위를 식혀 주었으며 76년에 출 시된 역풍선풍기(모델명 FD-3524SC)도 단일 모델로는 가장 많은 45만대가 판매돼 대기록을 남겼다.
이밖에 "백조세탁기" "눈표 냉장고" "샛별 TV"등과 전기곤로.전기밥솥. 믹서 기.석유난로.가스레인지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가전기기들이 속속 개발돼 공급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 착오를 거치기도 했다.
이렇듯 70년대 중반부터 금성사와 삼성은 가전을 중심으로한 국내 전자 산업 의 리더로 부각되면서 튜너부문에서도 경쟁체제를 형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