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전자산업 남북경협(4);부품

전자부품은 전자업계가 대북 경제협력에 나설 경우 가장 선봉에 서게될 분야로 손꼽히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기업들이 아직도 첨단 노하우가 축적된 기 술집약형 품목보다는 임가공 위주의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임가공 산업의 핵심은 임금및 노동 생산성이다. 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이면서도 이를 만족시킬만한 조건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교육받은 풍부한 노동력, 무엇보다도 값싼 임금, 노조등으로 인한 경영권시비 걱정이 없는 북한은 그래서 부품업계를 손짓하는 최적의 투자 지역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조건 때문인지 부품업계의 대북투자 검토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지난 92년 기업인 방북이 실현되고 남북 해빙 무드가 고조되면서 현대.대 우등 일부 재벌기업들의 대북 프로젝트가 발표될 때 중소기업군에서 호응이 제일 컷던 것도 부품업계였다.

당시 북한 진출을 심각하게 검토했던 기업은 대우전자부품.한독.한국AMP등이 었다. 대우전자부품의 경우 김우중 회장의 당시 방북 보따리에 필름 콘덴서 합작공장 설립이라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들어 있었다. 내용은 대략 10~1천6백마이 크로패럿 용량의 저압 진상필름 콘덴서를 연 4만3천개 정도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합작 투자비는 2백만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국내 부품업계의 대북진출이 실현될 경우 내용이나 형식등에서 하나의 "모델 케이스"로 상정할 만큼 관심을 끌어왔다.

물론 가장 중요한 공장 운영 형식은 제품생산에 필요한 기계설비와 기술지도는 대우가 맡고 공장 부지및 건물.종업원은 북한측이 지원하는 것이다.

한국AMP는 커넥터의 대북 판매거점 확보를 겨냥, 평양주재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것으로 단초를 잡았다. 이 회사는 우리보다는 훨씬 정보 채널이나 접근 경로가 다양한 미국기업이기 때문에 본사를 통한 접촉에 나서 장기적으로 는 합작법인 형태의 설립을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한독이 스피커연구조합과 공동으로 4백억원을 투입, 개성 부근에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들은 그 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자연히 물 건너 간 꼴이되었다. 새로운 남북경협시대를 예고하는 현재에 와서도 프로젝트의 재추진 의사는 불투명하다.

그 때의 경험이 주효해서인지는 몰라도 부품업계의 대북투자 검토는 의외로 신중하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남북한간의 특수관계가 부품업계 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대북투자에 있어서는 남북 양측 정부의 정책 방향이 키를 쥐고 있다. 업체 단독으로 무엇을 해보고 싶어도 정책 방향과 모순된다면 감히 나설 수 없는것이다. 더욱이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부품업계로서는 세트업계의 동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단독변수"이기보다는 "종속변수"의 성격이 강하다.

투자를 하려면 우선 궁합이 맞아야 한다. 그래서 남북한의 경협정책을 검토 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원칙은 확고한 것 같다. 사회간접 자본이나 대규모 제조업처럼 투자 리스크가 큰 것은 피하자는 것이다. 북한의 현실을 감안하고 실제로 북한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섬유등 생필품분야를 위주로 소규모 경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정책은 정확하게 공표된 것이 없다. 하지만 이를 추론해볼 수 있는사례는 많다. 정부 당국자의 표현을 빌리면 북한이 투자해주기를 원하고 가장 높이 평가하는 국내기업은 럭키금성그룹이라고 한다. 굳이 그들의 시각으로 재벌기업의 순위를 매기면 럭키금성이 1위, 대우가 2위, 삼성과 현대가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매출 규모로 따지는 우리의 일반적 평가와는 반대되 는 현상이다.

북한은 럭키금성이 국내기업중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하고 기업문화가 자신들의 정서에 부합한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럭금의 평가 에는 이 회사가 비누.치약을 비롯,생필품에 관한한 최고의 생산업체라는 점이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이것을 뒤집으면 북한 역시 "체제위기" 를 수반할 지도 모를 SOC(사회간접자 본)등 대규모 투자보다는 자신들의 필요에 의한 경협분야를 원하고 있다고할 수 있다. 때문에 전자관련 부문은 일단 우선순위에서 뒤처진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부품업계의 진출을 꺼리게 하는 요인은 또 있다. 지난해 이후 종합부품 업체 는 물론 전문업체들까지 해외생산 이전 바람이 불고 있다. 임금및 생산성 때문이다. 주요업체들의 대부분이 중국과 동남아에 2~4개에 달하는 공장을 설립했거나 진행중이며 거의가 내년부터 해외 생산이 본격화된다.

자본력이 취약한 부품업계로서는 북한에 들어가고 싶어도 여력이 없다. 이미 주요기업들은 북한에서의 메리트를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발견,투자를 진행중 에 있다.

따라서 북한행 열차를 타기에는 아직 이르다. 삼화컨덴서처럼 창업주가 북한 출신이고 이곳 진출을 소망하는 기업도 이미 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북한진출은 "미래의 일"로 남겨두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까지 북한진출 의사를 명확하게 표명한 것은 삼성전관 정도에 불과하다. 이 회사는 그룹의 지침에 따라 컬러 브라운관 조립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는 업계나 정부당국의 안테나에 잡힌 기업은 별로 없는 것으로알려졌다. 세트업체와의 동반진출이 정석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트의 동향이 불투명하면 부품 역시 "가시거리"가 좁을 수 밖에 없다. 단독 진출은 리스크 가 따른다. 중소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비슷한 환경의 중국 에서도 성공 보장이 별로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부품업계의 대북 진출은 세트업체를 따라가는 형식이 될 것이다. 단독 투자 라면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외국 현지법인들이 앞서 나갈지도 모른다.부품업계의 대북경협은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는 아직은 "정중동"이다.

<이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