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가전제품 디자인개념 바뀐다

디지털화가 급진전하면서 가전제품 디자인의 개념이 바뀌어가고 있다.

제조업체와 하드웨어 중심의 디자인에서 점차 소비자와 소프트웨어 중심의디자인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가전업체들은 종전까지 디자인을 제조원가의 개념에 맞춰 왔다. 먼저 제조원가를 가장 낮출 수 있는 형태로 회로와 부품 배열을 결정한 후 디자이너에게 제품 외관을 맡겼다. 제품 설계와 디자인은 별개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런데 이제는 디자인에 맞춰 회로설계와 부품배치도 달리 하는 생각으로바뀌고 있다. 디지털화와 아울러 부품 표준화가 진전하면서 어떤 설계방식을채택해도 제조비용이 거의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가전제품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 욕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마다원하는 모양이 사뭇 다르며 뭔가 색다른 것을 원한다.

삼성전자의 구기설 AV디자인그룹장은 『그동안 생산자 입장에서만 제품을디자인했지만 이제는 소비자입장에서 디자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되도록 원가를 줄여 제품 값을 낮추고 이를 통해 소비자를 만족시킨다는 가전업체들의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예전에는 제품디자이너들은 회로설계자와 대화할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제품 설계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다. 목소리도 날로 커지고 있다.

관계자들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마케팅담당자와 제품개발자가 상품기획자와 디자이너를 괴롭히던 시대였는데 이제는 상황이 거꾸로 됐다』고 말했다.

디지털화가 가속화면서 하드웨어 중심의 디자인도 점차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요즘 가전제품의 주요기능은 한 두개의 디지털신호처리기(DSP)로 가능해졌다. 기능조작도 그래픽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최근에 선보이고 있는 TV들은 윈도환경에 익숙해진 세대들을 겨냥한 듯 화면속에 메뉴판을 놓고 아이콘을 움직이며 작동시킨다.

제품 디자인은 이같은 메뉴기능의 배열 방식과 아이콘의 모양 등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어졌다. 단순히 제품 외관에만 머무르지 않게 됐다.

요즘 가전회사의 그래픽디자이너는 바빠졌다. 그동안 이들은 제품 브로셔와 카탈로그를 만드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제는 제품 설계에 직접 참여한다.

일반 디자이너도 그래픽 처리기술에 대해 모르면 디자인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정도라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철배 주임연구원(LG전자디자인연구소)은 『「블랙박스 디자인」에서 「윈도 디자인」으로 디자인 개념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빌면 「블랙박스 디자인」은 회로설계 및 부품 등 가전제품의내부가 뭉뚱그려진 상태에서 겉모양의 개선에 치우친 디자인을 뜻한다.기존가전제품은 이 디자인 개념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와 달리 「윈도 디자인」은 제품의 특성을 표현하는 소프트웨어 방식에무게중심을 둔 새로운 디자인 개념이다. 디지털시대에는 「윈도 디자인」이주종을 이루게 된다.

이밖에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기술 과시적인 디자인도 점차 자연주의적인디자인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첨단기술을 적용하면 꼭 제품 외관에 표현했다. 요즘에는 새 기술을 적용할수록 외관을 단순화한다. 최근 나온 제품 가운데는 외부의 버튼을 거의 없애고 리모컨으로 작동하게 하는 제품이 수두룩하다. 리모컨도 사용 빈도수대로 버튼의 크기와 위치를 달리한다.

가전제품의 디지털화로 인해 디자인은 앞으로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디자인의 융통성이 넓어지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제품 디자이너들에게 보다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보다 무거운 짐을 안겨주고 있다.

〈신화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