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금요기획 화제와 이슈 (8);한국형예약녹화시스템

가전업계와 방송사가 공동으로 개발, 지난해 9월부터 서비스를 개시한 「한국형 예약녹화시스템(KBPS;Korea Broadcasting Program System)」이 당초 기대와는 달리 고사위기에 처해 있다.

일명 「바로K」라고도 불리는 한국형 예약녹화시스템은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일정표를 TV화면에 띄운 후 녹화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해놓기만 하면 자동으로 녹화가 되는 방식으로 예약녹화에 따르는 불편함을 말끔히 해결해주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이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선 방송국은 자사가 방송할 1주일간의 프로그램 관련정보를 24시간 전파에 실어 송출해야 하며 일반시청자는 방송국이 보낸 신호를 저장, 재생할 수 있는 칩세트가 내장된 VCR를 구입해야 한다.

이 방식은 날짜나 시간은 물론 프로그램 코드를 입력할 필요조차 없고 방송프로그램 일정이 변경되어도 자동으로 예약된 프로그램을 추적해서 녹화해주는 등 기존 일반예약녹화방식이나 G코드보다 탁월해 방송업계와 가전업계는 이 시스템의 보급이 국내 시청자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함은 물론 침체된 VCR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외산 VCR의 내수시장 침투를 저지하는 데도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KBPS를 이용한 서비스는 현재 KBS, MBC, SBS, EBS 방송 4사가 모두 제공하고 있고 가전3사와 아남전자는 지난해 7월부터 각각 이 기능을 자사의 VCR 주력제품에 채용함으로써 현재 총 4개 모델이 출시된 상황이다.

이러한 현황으로만 볼 때 KBPS는 순조롭게 보급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 프로그램이 주종을 이루는 KBS와 EBS를 제외하고 지방계열 방송국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MBC와 SBS는 서울, 경기권을 제외하곤 KBPS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방송국의 KBPS 운영비를 가전업체가 지원하도록 돼 있으나 가전업체들은 계열사 단위의 방송국까지 일일이 운영비를 지원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업체들이 KBPS 보급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선 칩세트 가격이 비싸 VCR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발한 1세대 칩은 개당 3만원 안팎을, 올해 4월에 시제품을 발표된 2세대 칩도 양산가격이 1만5천∼2만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칩을 채용할 경우 소비자가격은 4만∼5만원이 높아져야 하는데 국내 VCR시장에서 판매비중이 가장 큰 40만원대 이하의 제품에는 가격 부담으로 인해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즉 KBPS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중저가 보급형에 한국형 예약녹화기능이 확대 채용되어야 하는데도 가전업체들이 칩가격 때문에 채산성을 맞추는 데 한계가 있어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또한 중저가 제품에 이 기능을 채용하게 되면 이 기능이 없는 동급의 구모델을 소진시키기 어려운 점도 가전업계를 고민스럽게 만드는 요인이다.

가전업체들은 이같은 고민 때문에 방송국이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차원에서 KBPS 송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라고 있으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방송국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KBPS는 한계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그것은 일정한 분량의 문자정보를 VCR의 메모리에 저장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KBPS 개발에 참여한 KBS기술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메모리방식이 노이즈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확장성이 취약한 것이 가장 큰 단점』이라고 지적하면서 『현재의 메모리방식으로 채널이 30개나 되는 케이블방송에 KBPS를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KBPS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방송계와 가전업계가 총대를 메지 않으려 했던 신경전에서 비롯됐다.

가전업계는 방송국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 이 시스템을 홍보하고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방송국은 가전업체가 KBPS가 채용된 VCR를 빨리 보급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KBPS가 VCR는 물론 TV나 TVCR에 프로그램 안내수단 등으로 활용가치가 크다는 점은 양측 모두 인정하고 있다.

KBPS는 미국의 스타사이트, 독일의 VPT 등 선진국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국내 시청자(소비자)가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시스템 개발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방송계의 적극적인 참여와 가전업계의 기술개발 노력이 요청된다.

<유형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