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가.
맨홀에서 솟구치는 불길이 휘청거렸다.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 늘어선 은행나무 노란 잎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맨홀 속에 굳건히 뿌리를 심은 불기둥이 종로 쪽으로 기울어졌다. 연기가 흩어지고, 불길 위로 쏟아 붓는 소방관들의 물이 짧게, 짧게 무지개를 그려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끝을 훔치려는 듯 차가운 혀를 날름거리는 뱀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빛도 마찬가지. 색깔이 있기 때문에 천상의 그림자 지지 않는 빛조차도 상대적이다.
선과 악, 밝음과 어둠도 마찬가지.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상대적인 것은 비극이다.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불기둥이 다시 한 번 휘청거렸다.
독수리가 바람이 부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날기 시작했다. 독수리의 목에 휘휘 감긴 뱀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조로아스터가 선을 선택했든, 악을 선택했든 그것은 비극 안에서의 일이다. 비극은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확정된 상황에서의 상대적인 현상, 그것이 바로 조로아스터의 비극이다. 상대적인 것은 객체의 부각과 동시에 비극의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
사이렌 소리가 약해졌다.
불 구경하는 사람들도 지친 듯했다. 단조로움은 늘 인간들을 질리게 한다. 그것 또한 비극이다.
바람.
바람은 단조로움이 아니다.
서대문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다시 불기둥을 휘청이게 했다. 세종로 지하도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낮게 흩날렸다.
독수리가 바람부는 쪽을 향해 비행을 계속했다.
날개를 퍼덕이며 독수리가 말했다.
바람부는 쪽으로 가 보자. 바람은 새로움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늘 새로움을 준다.
사내가 독수리에게 외쳤다.
『독수리여, 조로아스터가 만든 갈라짐의 다리는 어디 있는가? 선과 악을 구분하는 갈라짐의 다리는 어디 있는가? 신자로, 다만 신자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극의 씨앗을 심어 준 갈라짐의 다리는 어디 있는가?』
날개를 퍼덕이며, 바람 부는 쪽으로 비행을 계속하는 독수리가 말했다.
끝이다. 세상 끝에 그 다리는 존재한다. 아직 그 끝은 다가오지 않았다. 세상 끝이 오는 날 그 다리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