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화 통화요금 논쟁.. 정액제냐 시간제냐

러시아에서 전화요금체제를 놓고 정부와 국민 사이에 뜨거운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통화시간에 상관없이 일정액을 징수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에 따라 분당 요금을 징수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개편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정부와 지방단체, 국민간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최근 들어 러시아 정보통신부가 전화요금체제의 현실화를 내세우며 외국처럼 분당 요금으로 계산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우랄지방과 페르미市 등 10개 지방이 정부의 새로운 전화요금정책에 호응하기 시작했지만 29개에 달하는 다른 지역들이 통신시설의 낙후와 일부 전화 사용자들의 요금지불능력 등을 이유로 들어 성급한 시행을 늦추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어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각국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당 전화요금 계산방식이 러시아에서 이처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의식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1917년 사회주의혁명 이후 러시아에서는 전화서비스를 민간이 아닌 국가에서 독점해 왔다. 통신당국은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돈을 받고 국민에게 전화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에게 당연히 베풀어야 할 사회적 의무로 인식해 왔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 붕괴 이후 국제전화와 일부 시의 전화서비스가 자본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분당 요금징수체제로 전환됐음에도 불구하고 『전화는 가스나 전기처럼 한 달에 일정액의 저렴한 사용료를 내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의식이 아직도 짙게 남아 있다.

사회적 서비스에 대한 이런 「공짜심리」는 지방으로 가면 더욱 심해져 전화요금 징수체제의 개편을 둘러싸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정부의 의도대로 전 지역으로 새로운 전화요금체제가 빠르게 확산되지는 못하는 까닭은 먼저 교환기를 비롯한 통신장비의 낙후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페르미市의 통신사업자인 지방관영 통신공사 대표 블라디미르 르이바킨은 『각 지방단체에는 새로운 요금체제에 맞는 전자교환기를 설치할 자금도 모자라지만 이와 함께 한 번 새로운 통신장비를 들여놓으면 적어도 20년 이상을 기다려야 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투자가를 찾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하면서 『지방의 통신서비스 운영업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장비가 요금체제 개편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전화비 지출의 상승을 우려하는 일부 지방민들의 반발도 만만치가 않다. 페테르부르크 일부 지역의 경우 새로 도입된 전화통화 요금방식으로 요금이 징수되자 이에 항의하는 국민들의 편지가 빗발치고 있으며 다른 지방의 경우에도 사정은 이와 비슷한 실정이다.

특히 적은 연금으로 생활하는 연금생활자들의 불만은 더욱 커서 『물가가 계속 오르는 바람에 연금액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이제 전화마저 우리들에게서 빼앗아가려 한다』며 강력하게 통신당국에 반발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일부 지방에서는 절충안도 나오고 있다. 우랄지방에서는 전화 사용자를 개인과 기관으로 분리해 분당요금을 차등부과하는 한편 개인의 경우 한 달에 2백70분은 요금을 계산하지 않는 특혜를 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화이용자 가운데 국가발전에 공이 큰 전쟁참가자 등에게는 더 큰 혜택을 주고 있는데 이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편 새로운 전화요금 징수제도를 도입한 지역에서는 처음 3개월 동안 통화수입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가 그후 점차 회복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정보통신부의 한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통신설비 현대화를 책임지고 있는 국영 통신투자의 알렉산드르 리파토프는 『상당한 진통을 수반하겠지만 결국 2∼3년 안에는 분당으로 전화요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제도가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지역의 사정에 맞는 단계별 요금체제로의 전환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일부 지방의 시내 전화요금을 분당체제로 개편하는 것은 사회적 긴장도를 떨어뜨리면서 전화서비스에 대한 지방민들의 지불능력을 점검해보는 시험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하면서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러시아 전역에서 정확한 통신비용을 분석하고 통신설비를 현대화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의 통신인프라를 서유럽 수준으로 고치고 발전시키겠다는 러시아 정보통신부의 의지를 강하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스크바=김종헌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