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이 상장되기 전에 퇴사하는 종업원은 액면가 1만원짜리 우리사주를 10원에 양도해야 한다.』
한국의 휴렛패커드를 꿈꾸며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기인시스템(대표 이기원)의 엔지니어 7명이 결성한 기술지분 투자자연합의 정관에는 기술개발을 위한 의기투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종업원에게 회사성장의 과실을 나눠주기 위해 무상으로 주식을 주었지만 「의리없이」 회사를 떠날 때는 이를 헐값에 내놓고 나가야 한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기인시스템 기술자들은 조만간 이루어질 주식의 장외등록은 물론 주식상장 때까지 회사를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92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대학원 출신인 20, 30대 박사가 모여 창업한 벤처기업인 기인시스템은 각종 자동제어시스템의 개발에 나서 디지털 보호 계전기, 발전소 분산제어시스템, 영상차량검지장치, 지능형 교통신호시스템 등 창업 5년여 만에 20여종의 신제품 국산화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전력선을 이용한 새로운 통신시스템 개발에 착수, 오는 10월께에는 깜짝 놀랄 만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기인시스템의 대표적인 제품은 디지털 보호 계전기.
이 회사는 일본의 도시바, 미쓰비시전기, 미국 GE, 스웨덴 ABB 등으로부터 연간 3백억∼4백억원어치 이상을 전량 수입에 의존해오던 1백54㎸/3백45㎸급 송전선로 디지털 보호 계전기를 국산화해 한국 전력분야의 자존심을 세운 주인공이다.
기인시스템이 한국전력으로부터 개발자금을 지원받아 10여년간 기술개발을 완료, 최근 한국전력으로부터 기술검토를 받고 있는 이 회사의 기술력과 성장잠재력을 과시한 첨단기술로 일본 도시바조차 깜짝 놀란 혁신적인 제품이다. 이 시스템은 송전선로를 24시간 실시간으로 감시하면서 정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고발생 지점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알려줘 정전구역을 복구해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다.
기인시스템은 또 국내 최초로 동기접속형 디맨드 컨트롤러(최대전력 관리장치)를 개발, 피크전력을 자동제어해 요즘같은 여름철에 전력난 해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제품은 이미 기술력을 인정받아 국산신기술인증(NT), EM마크를 획득했다.
기인시스템은 전력제어분야 노하우와 함께 최근에는 교통부문에도 새로운 도전장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와 지능형 교통신호시스템을개발, 서울시에 공급한 데 이어 최근에는 독자적으로 차량의 속도와 통행량을 카메라로 측정하는 한국형 영상차량검지장치와 무인속도감시장치를 독자 개발, 건설기술연구원이 지능형 교통시스템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도 3호선 영상차량검지시스템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기인시스템이 전력, 교통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것은 디지털시스템 하드웨어, 통신, 리얼타임 소프트웨어, 자동제어, 신호처리 등의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매출액의 3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투입하는 이 회사는 종업원 32명 중 70%가 부설기술연구소의 연구개발인력이다.
이기원 사장과 함께 기인시스템을 이끌고 있는 정범진 차세대팀장(공학박사)을 비롯, 이재경 전력팀장, 김현종 소프트웨어팀장, 차양환 사업1팀장, 김재건 생산팀장, 김진태 하드웨어팀장 등 핵심 두뇌들은 한국의 휴렛패커드를 실현시킬 30대 주역들이다.
지난 92년 6천만원에서 95년 7억원으로 3년 만에 10배 이상의 매출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기인시스템은 지난해에는 63억원으로 매출이 급증한데 이어 올해 매출목표 1백30억원에 당기순이익을 매출액의 10%로 잡는 등 순이익 역시 매년 큰폭으로 늘고 있다.
기인시스템은 최근 현재 9천6백bps의 속도까지 개발에 성공한 차세대 전력선 통신시스템(Wireless LAN Power Line)을 오는 10월까지 최고 56kbps급까지 완료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10Mbps급까지 상용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달 안으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출신 연구원 8명과 자사 직원 2명 등으로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시에 현지 벤처기업인 초기자본금 1백만달러 규모의 「KEYIN USA」사를 설립, 정보통신부문에 도전할 계획이다.
Wireless LAN Power Line은 차세대 전력선 통신시스템으로 불리는 기술로 통신을 위해 별도로 통신용 케이블을 포설할 필요없이 산간 오지까지도 깔려 있는 전력선을 이용해 통신을 가능케 하는 첨단기술로 한국전력 등 전력회사들이 변전소간에 고압선을 이용해 2천2백bps의 저속으로 데이터를주고 받는 데 사용하고 있으며 고속화의 실현이 관건이었다.
이 기술이 성공하면 전화선없이 전선과 콘센트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데이터통신이 가능하게 된다.
기인시스템은 이와 함께 제어분야 중심의 사업에서 철교나 다리의 이상상태를 감시할 수 있는 온라인감시시스템과 발전소 감시자동화시스템사업 등 자동화사업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기인시스템은 이를 바탕으로 내년도 매출목표를 3백50억원, 99년 8백억원, 2000년 1천2백억원 규모로 잡고 올해 전력분야 80%, 교통 16%, 산업전자 2.4%, 정보통신 1.5%의 사업비중을 오는 2000년에는 전력 30%, 교통 30%, 산업전자 10%, 정보통신 30%로 다각화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등 한국 최고의 벤처를 꿈꾸고 있다.
[인터뷰] 기인시스템 이기원 사장
『남이 하지 않는, 상대적으로 기술이 뒤처진 분야에 타 분야의 첨단기술을 접목시켜 시장을 선점하면 초기 시장을 주도할 수 있어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증식이론(Propagation Theory)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는 이기원 사장(37)은 벤처기업 하면 으레 소프트웨어, 통신, 멀티미디어 등 요즘 잘 나가는 분야를 손꼽지만 전력, 교통 등 산전분야가 내실있는 매력적인 사업분야라고 단언한다. 매출 대비 이익률이 겉보기와는 다르고 신기술에 도전해볼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그는 산전분야가 부가가치가 높고 경쟁이 비교적 제한적이며 세계시장을 따라잡을 수 있는 벤처기업의 성공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국내기술이 낙후된 전력, 교통, 전력선 통신분야와 첨단 하드웨어 및 통신, 소프트웨어기술을 접목시키고 전문업체와의 외주생산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최대한 높여가고 있다.
그는 산전제품의 경우 제조원가가 대부분 30∼40%에 불과, 그만큼 부가가치 창출이 높고 수요는 급증하고 있으나 국내 생산능력은 거의 없어 개발여지가 무척 넓고 많다고 덧붙인다.
이 사장은 자사가 개발한 디지털 보호 계전기의 경우 산전제품이라기보다는 산업용 컴퓨터와 DSP기술, 통신기술 등을 접목한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제품으로 정보통신부문 진출을 위해서도 충분한 기술축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연간 3백억∼4백억원 규모에 이르는 한국전력의 공급물량을 대부분 GE, ABB, 미쓰비시, 도시바 등 4개사가 차지하고 있으나 대부분 10여년 전에 개발한 제품으로 최근 실시중인 한전의 기술검토작업이 완료되면 기존 시장의 절반 이상은 가격 및 기술력에서 월등하게 우수한 자사 제품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사업을 무턱대고 시작하기보다 치밀하게 준비했다.
89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 부가통신연구소 등에서 2년여 근무하면서 사업을 준비하다 한국전력으로부터 1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 3명의 박사와 자본금 5천만원으로 기인시스템의 전신인 퓨져산전을 설립했다.
이 사장은 기인시스템이 정식 출범한 지 1년도 채 못돼 장은창업투자의 투자를 이끌어낼 정도로 기술에 대한 투지가 높았다.
『벤처기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년까지 1인당 매출액을 10억원 수준으로 올리고 오는 2000년에는 30억원 이상으로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그는 그래서 주요 제품의 제조원가(M/C)를 10%선까지 낮추는 데 목표를 두고 기술개발투자를 적극 늘려나갈 생각이다.
요즘 대학 2, 3학년생까지 벤처기업 창업을 준비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너무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정보통신이나 소프트웨어부문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 사장은 『자신만의 기술로 해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고서는 1∼3년 이내에 잘 나가는 분야도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말하고 『순이익이 많은 분야를 놓고 자신의 능력과 기술력을 평가, 장기적인 방향설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인시스템을 비롯, 중앙소프트웨어, 서두로직, 하나기술 등 11개 우량 중소기업 경영자의 모임인 「기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 사장은 변대규 건인 사장, 김덕우 우리기술 사장과 함께 벤처창업의 산실인 서울대 자동화연구소 제어시스템연구실 출신의 창업 2세대이기도 하다.
<정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