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우리나라가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칠 때 우리는 일본제품들을 보면서 뛰어난 디자인에 새삼 놀라워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일본 전자제품의 디자인은 아직도 세계가 인정할 정도로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고 자동차분야에서 보듯이 성능뿐 아니라 디자인으로까지 상품경쟁력을 높여가면서 전세계를 압도하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캐드(CAD:Computer Aided Design)다. 캐드가 적용된 분야는 가전이나 자동차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반도체 칩 설계에서도 전자설계용 SW(E캐드)를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상품가치와 시장경쟁력을 높여주는 제품 디자인을 위해 사용되는 캐드 SW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80년대 초반으로 도입된 지 20년도 안된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카티아, 오토캐드, 아이디어스, 마이크로스테이션, 솔리드웍스, 솔리드에지 등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각종 캐드 SW는 특화된 제품을 빼고라도 줄잡아 수십종으로 국내 시장은 그야말로 세계적 캐드업체의 대리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지난 80년대 초만 해도 낯설었던 캐드 SW는 어느새 기계, 조선, 자동차, 전자, 반도체, 항공우주산업, 건축분야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에서 필수 불가결한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산업 전반에 걸쳐 캐드 사용이 보편화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종별로는 자동차, 전기전자분야가 특히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는 있지만 자동차산업과 가전분야에서는 이제야 디지털 모크업이 가능할 정도로 국내에서의 캐드캠 활용은 선진국에 비해 더디다. 이는 캐드 SW를 도입하고도 그 활용에 있어서는 단순 설계만 했지 완전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설계를 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세계적으로 제조업분야에서의 캐드 활용은 통신과 네트워크의 발전에 힘입어 점점 더 산업경쟁력을 강화시키는 핵심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캐드를 이용해 단순히 우수 디자인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제품 설계시간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등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즉 「제품설계에서 시장출하까지의 시간(Time to Market)」을 줄이는 데 역점을 두면서 경쟁사보다 고객확보 시점에서 우위를 갖추려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국내 자동차 판매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A사의 자동차가 B사보다 몇개월 늦게 나와서 고객을 빼앗겼느니 어쨌느니 하는 것도 알고 보면 디자인 설계와 이를 상품으로 구체화하는 시간이 경쟁사에 뒤지면서 적기출하를 놓친 때문이다.
캐드 고객들은 이러한 예들을 거울삼아 캐드캠 장비 도입시 한차원 높은 시스템 구축을 통한 활용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는 종전에 설계기능만을 위주로 한 캐드캠 장비 도입에서 탈피해 생산 전반에 걸친 제품정보관리시스템(PDMS) 구축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설계를 중심으로 한 단순한 캐드 활용이 이제는 제조업 내부의 부품 및 자재조달, 설계, 데이터 관리, 유통에 이르는 라인을 연계해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체들은 이를 단순히 하나의 직선적인 흐름이 아니라 생산 전반에서 동시에 이뤄지도록 하는 동시병행설계 기법을 도입해 업무절차가 제품생산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붐이 일어나면서 정보통신분야 관계자들에게는 일반화돼버린 인터넷도 캐드 활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제조업의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한 회사의 공장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각국의 공장은 설계내용을 신속히 전달받아 이를 활용해야 하는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은 캐드 이용자들에게서 발생하는 이러한 어려움을 손쉽게 해결해주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의 유명 캐드캠 개발업체들이 지난 2, 3년간의 노력 끝에 웹을 이용해 그래픽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 어느 회사든지 웹응용 캐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퍼져있는 공장에 즉시 원하는 데이터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네트워크 상에서 상호간에 설계도면을 수정할 수 있게 됐다. 컴퓨터가 제품생산에서부터 유통까지의 가교역할을 하는 핵심수단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가진 캐드 SW는 몇해 전부터 세계적으로 운용체계 상의 중대한 변화를 겪어왔다. 중형컴퓨터에서의 유닉스 운용체계가 아닌 데스크톱PC 기반의 윈도NT환경에서도 작동되는 고기능 저가 캐드캠 선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복잡한 유닉스환경에서 벗어나 윈도NT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쉬운 캐드 SW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생산성 향상 도구인 캐드캠 보급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최근들어 국내에서는 1천만원대에 달하는 윈도NT 캐드가 한시적이지만 가격이 5백만원대로 떨어지는 기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는 윈도NT 시장확대를 위한 영업전에 의한 것이지만 캐드캠이 그만큼 생산성 향상 도구로서 우리 주변에 가까이 와있다는 반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캐드SW는 이제 유닉스에서 윈도NT로 급격히 다운사이징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캐드캠 개발자들은 기존의 윈도기반 캐드 SW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CPU의 발전은 저가 고기능의 하드웨어 등장을 가능하게 했고 캐드 개발자들도 이 추세에 부응해 윈도에서 윈도NT로 업사이징된 제품군을 내놓기 시작했다.
자연히 유닉스계열 캐드 SW는 다운사이징되고 윈도계열 캐드캠 SW는 윈도NT로 업사이징되면서 전세계적으로는 윈도NT가 캐드캠 SW 사용환경을 주도하는 추세로 진전되고 있다.
이는 저가 고기능 캐드 SW를 원하는 사용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 최근 제조업으로 하여금 생산성 향상을 위해 캐드캠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가속시키는 촉매작용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은 하청업체들에 지원금을 주면서까지 자사가 표준화툴로 정한 캐드 프로그램을 도입하도록 장려하고 있고 중소기업들도 캐드가 생산성 향상 도구로서 제공하는 이점을 인식,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 캐드시장은 올해 기계설계용 약 6백억원, 전자설계용 7백억원 등 1천3백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 1천억원에 비해 30%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거대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캐드분야에서 우리나라는 그 흔한 2D제품도 외국업체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90년대 이후 매년 20% 이상 높은 시장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는 최근 2, 3년간 두자릿수의 성장세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세계 캐드캠 SW공급업체들에는 황금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지난 5, 6년간 외국유명 캐드업체들의 한국시장 진출을 유도했고 이들 업체는 국내시장을 거의 독식해 이제 시장수요의 95% 이상을 외국제품이 점령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다행히도 캐드 국산화의 성과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국산대체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서두로직, 윈스케메틱, 정소프트 등이 전자설계용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삼성SDS는 2D분야의 국내시장 석권을 목표로 제품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큐빅테크, 터보테크 등 업체는 캠툴을 통해 국내 시장에서 외산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서 수출에까지 나서고 있다.
이 가운데 캐드 공급사들은 최근들어 PDMS와 인트라넷분야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캐드 유통만로는 기업의 이윤확보가 어려워지는데 따른 자구책 모색이며 이 가운데에서도 나름대로의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마케팅차원에서의 최근 동향은 캐드의 프로그램도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가 가능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장래에 인터넷을 통한 SW 유통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더이상 기존의 캐드유통업체들의 사업유지를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전망 속에 캐드사업자들은 도면관리시스템 사업을 통해 캐드DB나 PDMS, 인트라넷의 구축 등 고부가가치사업에 나서고 있으며 점차 시스템통합(SI)사업자로 변화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 나라에서 캐드는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산업의 글로벌화를 부르짖는 우리기업의 성격과도 맞아 떨어져 전세계에 진출한 공장의 산업생산성 향상에도 중요한 수단으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재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