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업체의 거인 도시바가 21세기 새로운 하이테크시대를 앞두고 거듭나기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핵발전소에서 노트북PC, 심지어 토스터 등 소형가전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식으로 사업을 벌려 오던 도시바는 최근 들어 반도체경기 침체에 따른 수익구조 악화와 관료화된 기업문화, 외국 경쟁업체들의 공세 등으로 그다지 즐겁지는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4백60억 달러 매출에 5억5천9백만 달러의 이익을 올렸던 이 회사는 올해도 엔화약세에 따른 수출증가 덕분에 4.4% 정도의 이익률 증가를 예상하고 있지만 이같은 실적은 현재 호황세에 있는 미국 하이테크업체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올 이익률 소폭 증가
따라서 지난해 6월부터 최고경영자(CEO)자리를 맡아 오고 있는 이 회사의 니시무로 다이조 사장으로서는 지금이야말로 더욱 강력한 지도력과 결단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니시무로 사장은 이에 부응해 최근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축소, 정리하고 몇 개의 핵심기술을 집중육성해 나간다는 기본전략을 설정했다. 여기서 핵심기술의 결정체는 바로 「디지털」.
세계 최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는 노트북PC에다 최근에 발표한 「리브레토」미니 노트북,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플레이어, 멀티미디어 데스크톱 등 도시바의 다양한 디지털제품은 모두 니시무로 사장이 일궈논 결실이다.
니시무로 사장은 PC, DVD 등을 중심으로 한 이들 디지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위상을 굳힘으로써 21세기를 맞는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새로운 멀티미디어 산업의 표준확립을 위해 타임워너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업체들과의 협력을 더욱 굳게 다지는 한편 휴대형 정보단말기 분야에서도 일군의 미국 벤처기업들과 발빠른 제휴를 추진중이다.
디지털사업에서 니시무로 사장의 업적은 지난 94년 결성된 AD-I라는 개발팀을 모태로 하고 있다. 94년부터 AD-I부문을 맡게 된 니시무로는 1백여명의 엔지니어팀을 이끌고 DVD를 개발, 산업표준화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AD-I팀의 개발성과는 DVD뿐만 아니다. 지난 6월 발표된 0.9㎏ 초경량 미니노트북 「리브레토」도 이 팀의 산물로 도시바의 강력한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입증시킨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AD-I팀은 이밖에도 휴대형 네트워크 컴퓨터(NC)나 개인휴대단말기(PDA)에서 인터넷 뉴스 필터링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앞장서 왔다.
美 소비자 외면에 「긴장」
이에 못지않게 반도체사업도 니시무로 사장이 큰 관심을 쏟아 붓는 분야다. 한때 이 회사 수익의 효자노릇을 했던 반도체사업은 지난해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이익을 거의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도시바는 게임기나 휴대전화용 로직칩 등 가격변동이 크게 없는 반도체의 개발쪽으로 방향을 선회, 메모리 가격폭락에 따른 위험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도시바는 또 제품의 해외생산도 더욱 가속시키고 있다.
그동안 이 회사가 안고 있던 문제 중 하나는 일본시장에서는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자랑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큰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 일본에서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나 체격이 큰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아직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리브레토」 미니노트북이 단적인 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제품개발력이 일본내 공장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즉 여기서는 제품설계자나 근로자, 관리자들이 모두 일본인들이기 때문에 자국의 소비자들에게 적합한 제품은 잘 만들어 내지만 이것이 해외시장의 소비자들까지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도시바는 향후 5년동안 해외생산량의 비중을 현재 23%에서 36%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종업원과 이사진들도 다양한 국가출신들을 더욱 많이 채용해 국제적인 감각을 익힌다는 방침이다.
한편 PC분야에서는 가정용 시장에서 기대 이하의 실적을 보이고 있는 데스크톱전략을 전환, 기업용시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여기서 도시바는 노트북에서의 명성과 판매채널을 적극 활용, 현재 6위인 세계 PC산업 랭킹을 오는 2000년까지 3위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이다.
수직적이고 관료화된 조직과 기업문화를 일신시키는 것도 니시무로 사장의 몫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비대해진 관리자층을 한 단계 없애고 6만3천4백명 정도되는 종업원을 오는 2000년까지 5천명 정도로 점차 줄여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대량감원 등의 급진적인 처방이나 충격적인 리스트럭처링이 아니라 점진적인 방법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기업문화도 단계적 쇄신
니시무로 사장의 디지털사업에 대한 이같은 열망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부진한 오래된 사업들은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는다.
핵발전소와 TV나 VVCR등 일부 가전제품들은 수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지만 최근 들어 이익을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 핵발전소의 경우 지난 91년 이후 새로운 주문을 전혀 받지 못했고 가전분야는 지난 5년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니시무로 사장은 수익성이 악화된 2, 3개의 사업을 정리할 것을 검토중이다.이 역시 완전 매각이 아닌 합작사업 등의 방법을 통한 비용절감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 낮은 사업들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구업체들의 급격한 리스트럭처링과는 생리가 다른 기업을 이끌고 있는 그로서는 그만큼 기업문화나 종업원들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니시무로 사장의 디지털사업에 대한 열정이 이 회사의 수익구조를 개선시키고 21세기 디지털시대를 주도적으로 맞게 할지는 앞으로 좀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