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서 가려는 나를 향해 홍 십장이 말했다.
『너를 채용한 것은 내가 아니라 박 감독이지. 인사를 하려면 박 감독에게 해라. 박 감독은 지금 컨테이너 박스에서 본사에서 내려온 경리하고 무슨 계산을 하고 있을 거야. 그러나 떠나는 자는 말없이 가는 것이 좋아. 그것도 노가다판의 불문율이지. 다만 빚을 진 것이 없을 때라는 단서가 붙지만.』
『그렇죠. 뭐, 빚지고 말없이 떠나면 안돼죠.』
여자가 맞장구를 쳤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부둣가를 벗어나 다시 공사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람들은 거의 돌아가고 공사장은 텅 비었다. 자재를 정리하고 있는 몇 사람들이 창고 저편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집으로 가려다가 컨테이너 박스가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들러 박 감독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다.
떠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 데도 홍 십장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날 벌어 그날 생계를 이어가는 공사판의 노동자들은 떠날 때는 말이 없이 훌쩍 가버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그렇게 했기 때문에 구태여 인사를 하는 것이 이상해 보였는지 모른다. 거친 욕설이 난무하고 고된 노동을 하는 공사판, 비린내가 나는 부둣가의 술집,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작부, 그 속에 파묻혀 있는 아버지와 형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컨테이너 박스에 다가가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우뚝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안에서 이상한 대화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아이, 살살 해요. 아프단 말이에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빨리 끝내야지. 누가 오면 어쩌니?』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안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여관으로 가자니까 왜 싫다는 거야?』
『제 애인한테서 전화가 와요.』
『네 애인 전화 한 번도 못들었다. 대관절 애인이 있긴 있는 거야?』
『박 감독님이 참견할 일이 아니에요. 아이. 아퍼.』
『처녀도 아닌데 왜 엄살이야. 다리 좀 더 벌려봐.』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렇게 지저분할 수가 있을까. 나는 수치감이 들어서 그곳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하루 빨리 이 세계를 떠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공사판의 세계가 모두 이런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이렇게 무질서한 것은 나로선 무척 견디기 힘든 곳임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