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진 한글과컴퓨터 사장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동물의 왕국」이다. 이 프로그램은 동물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자연의 법칙을 제시해 주는 데 묘미가 있는 것 같다.
사자나 치타와 같은 맹수가 누우들의 이동경로를 주시하며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사냥을 하는 모습은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데 누우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잠시뿐, 맹수들의 행동을 나무라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이러한 자연의 먹이사슬에 순종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기업도 이러한 먹이사슬 구조가 원활하게 잘 짜여져 순기능적인 순환과정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면 결국 그 구조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벤처기업에 많은 것을 기대한다. 신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또 이것을 잘 만들어 시장에 팔아 빌 게이츠와 같은 거부가 나와주기를 바라며, 또 정부에서는 고용창출 효과 등도 함께 기대한다. 그러면서 정부는 많은 자금을 벤처 창업 또는 여러 가지 지원사업에 쓰고 있다. 이러한 저변 확대 정책을 볼 때 묘목은 잔뜩 심어 키워놓았는데 정작 큰 나무를 만들기 위해서 이 묘목을 옮겨 심을 장소가 없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것이다.
벤처기업은 그 기업의 탄생목적이나 규모로 봐서 대규모 매출을 일으킬 만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벤처기업이 어느 정도의 신기술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양산제품을 만들기 위한 공장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 그것이 소프트웨어라 할지라도 양산을 위한 여러 가지 품질관리 활동이나 패키지 제작 등이 필요하게 된다. 또한 이것이 수십만, 수백만 개를 팔 수 있는 것이라면 대형 유통채널은 물론이고 판매 후의 AS 등을 전담할 조직도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갖추어 하나의 시제품을 위해 조직과 자금을 투자한다는 것은 매우 무모한 짓일 수밖에 없다. 또 벤처기업가가 그런 경영 노하우를 갖추고 있을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벤처기업은 그 탄생부터 완전한 기업이 아닌 불완전한 기업이 되겠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즉 기술을 가지고 있는 벤처기업이라면 기술만으로 승부해야 된다는 것이다. 마케팅이나 영업·AS 조직 등은 처음부터 갖출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불완전한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에 대한 해답은 바로 M&A인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은 시작할 때부터 몇 년 안에 자신들의 기술이나 시제품을 원하는 기업에 팔아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합병 후 대형 회사의 조직을 빌어서 양산제품화를 추진한다. 따라서 많은 벤처기업들이 쓸데없는 인원을 줄이고 오로지 시제품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대기업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아성을 크게 가져가려고 노력했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경영권 침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이 결국은 자연스러운 먹이사슬의 단절을 만들었다. 그 결과 양방에게 매우 불리한 사회적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이와 같은 단절된 구조가 자연스러운 먹이사슬 관계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만들어 주어야만 심혈을 기울여 투자하고 지원한 벤처기업들이 제대로 살아나 그들의 창의성과 아이디어 제품이 큰 기업들에 의해 상업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주식교환에 의한 M&A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때 대기업은 벤처기업의 주식을 자신들의 주식과 교환함으로써 현금동원 없이 회사를 인수할 수 있게 된다. 벤처기업의 핵심인력들은 큰 기업의 주식을 받으므로 해서 마치 스톡옵션을 받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러한 주식의 맞교환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것이 바로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둘째, 대기업의 중소기업 인수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이제는 바꿀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대기업은 시장을 가지고 있고 또 시장의 요구를 읽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벤처기업은 참신한 아이디어나 기술이 있지만 이것을 대규모 사업화로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 두 요소가 결합을 해야만 제대로 된 성공사례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들은 창업 초기에 조성된 자금으로 이른 시간에 M&A를 위한 시제품 개발에 총력을 다하고는 M&A를 당해야 한다. 그리고 더 큰 조직의 힘을 빌어 자신들의 꿈을 완성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실패하면 바로 회사 문을 닫고 다른 방법으로 다시 도전해야 된다.
우리들에게 이러한 자연스러운 먹이사슬이 존재한다면 정부가 육성하려는 벤처기업 중에 스타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묘목째로 성장을 멈추게 될 많은 벤처기업들의 아우성을 듣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