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문> 낙관주의란 소외된 형태의 신념이고 비관주의란 소외된 형태의 절망이다

에리히 프롬 저 「파괴란 무엇인가」 중

『여기서 채택한 입장은 인간이 만들어낸, 얼른 보기에는 숙명적인 듯한 환경의 그물에서 빠져나가는 능력에 관한 합리적인 신념의 입장이다. 그것은 「낙관주의자」도 아니고 「비관주의자」도 아니며, 최종적인 파국을 면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합리적 신념을 품고 있는 혁신적인 사람의 입장이다.

이러한 휴머니즘적 급진주의는 사물의 근본에까지, 따라서 그 원인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환상의 사슬에서 해방하는 것을 요구한다. … 신념을 갖는다는 것은 감연히 행한다는 것,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는 것,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의 한계 내에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매일같이 구세주를 고대하면서 정해진 때에 구세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낙담하지 않는다는 그러한 역설적인 희망이다. 이 희망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며 또 언제까지나 유유히 참고 있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애태우며 능동적이고 현실적인 가능성의 영역 안에서 온갖 행동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메모: 한 해 동안, 벤처 기업들은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를 극단적으로 오갔다. 프롬에 따르면 낙관주의란 소외된 형태의 신념이고 비관주의란 소외된 형태의 절망이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래서 사실 비관주의자들은 낙관주의자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낙관주의자가 비관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낙관주의나 비관주의의 극단적 감정에 빠지지 않고 프롬이 말한 「역설적인 희망」인 합리적인 신념을 가지는 일이다. 모두 낙관주의자가 됐을 때 낙관주의에 빠지지 않고, 모든 사람이 비관주의자가 될 때 비관주의를 극복하는 사람이 정말 많이 필요한 때다.

<고은미기획조사부장 emk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