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루머 바이러스

『벤처 옥석가리기라면 차라리 조용히 진행됐으면 합니다. 터무니없는 루머가 증시에 돌고 어디서 날아온지도 모르는 돌에 맞아 중병을 앓는 벤처는 너무 억울합니다. 벤처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든 아니면 현재가치가 중요하든 투자자들의 마음이겠지만 정확한 시각만 가지고 있다면 루머따윈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겁니다.』

4일 오후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벤처기업 P사장은 끓는 속을 참지 못하고 울분을 토했다. 가급적 주식시장에 개입 않고 사업에만 열중하려던 그에게 악성루머가 기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잘 떨어지지 않는 감기바이러스처럼…. P사장이 여의도에 온 이유도 증권사를 찾아 루머의 근원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P사장은 지쳤다. 항간의 루머에 익숙지 않는 그에게 루머란 링위에서 처음 얻어 맞는 강펀치와 같았다. 처음엔 「그러려니」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인 것처럼 인식됐다. 「속 빈」 루머는 단지 루머로서 끝나지 않았다.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루머는 가속도를 더해 걷잡을 수 없는 눈덩이가 됐다. 하소연할 마땅한 곳도 없었다. 루머는 루머를 낳는 「자가번식」이 강하다는 것도 P사장은 처음 알았다. 결국 잘나가던 P사장 회사의 주가는 보름도 안돼 3분의 1 토막이 됐다. 주주들의 성화는 대단했다. 잇단 항의로 업무 진행이 힘들 지경까지 이르렀다.

『열심히 일해 값진 성과를 직원과 주주 모두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CEO 본연의 의무인데 요즘은 진짜 사업보다 주식시장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 아닙니까. 허약한 사람이 헛 꿈에 시달리듯이 허약한 자본시장이 악성 루머를 만들어 내고 결국 자승자박하는 꼴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P사장의 결론이 옹골지다.

벤처기업의 구조조정이 시간을 끌면서 여러 업체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게이트」에 이은 「진게이트」로 뿌리없는 소문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염되고 있다. 좋은 소문은 번식력이 약하다. 반면 나쁜 소문은 번식력도 강하고 시장 파급력도 대단하다. 루머의 속성이다.

벤처기업들에 루머는 아직 체질화 되어 있지 않다. 대항할 조직도 없고 방법도 모른다. 주주들의 막무가내식 항의도 감당키 어렵다. 그저 속만 썩을 뿐이다. 루머는 벤처거품론의 한가운데서 풀죽은 벤처기업에 뒤통수를 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옥석가리기」가 끝나든지 아니면 루머가 가라앉길 바랄 뿐이다. 튀는 파편에 잘못 맞은 애꿎은 벤처기업만 불쌍한 꼴이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