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품.소재산업 르네상스를 위하여>21회/끝-정부정책을 다시 쓰자

「부품·소재 전문기업 육성 특별법 제정」 「정보통신 핵심부품 기술개발사업에 2005년까지 9300억원 투입」.

낙후된 국내 부품산업의 발전을 제고하기 위해 올 들어 정부가 발표한 굵직한 부품산업 육성책의 주요 골자다.

지난 90년 산업자원부의 전신인 상공부가 부품소재 국산화를 위해 국산화 개발품목 307개를 지정, 발표한 이후 정부는 지속적으로 부품·소재산업의 발전과 전자제품의 국산화를 위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고 많은 육성책과 정책지원방안을 내놓았다.

또 정부의 부품·소재산업 육성책과 전자업체들의 기술노력 등으로 지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금의 이동전화기 부품국산화율에도 못미쳤던 컬러TV와 비디오·전자레인지의 부품국산화율이 90%를 넘어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부품·소재산업에 관심을 갖고 다각적인 육성방안을 내놓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국내 부품산업은 여전히 취약한 산업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전자제품 수출이 늘수록 핵심부품의 수입 또한 이에 비례해 늘어나 무역수지 개선효과를 반감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내 부품산업의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정부의 정책이 없다」는 지적이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

『잊혀질 만하면 한번씩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부품·소재산업 관련 정부정책 발표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입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정부정책이 발표됐는지도 잘 모르겠고 또 그게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중소 전자부품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L사장의 말대로 정작 현업에 종사하는 부품업체 사장들의 상당수는 정부의 부품·소재산업 육성책 및 지원방안을 통해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비슷비슷한 내용의 부품·소재산업 육성책이 각기 다른 시점에 다른 부처에 의해 발표되는 사례도 없지 않아 혼선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마저 제기되고 있다.

모두에서 언급한 「부품·소재 전문기업 육성 특별법」과 「정보통신 핵심부품 기술개발사업」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사례의 하나로 지적할 수 있다.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부품·소재 전문기업 육성 특별법」과 정보통신부가 내놓은 「정보통신 핵심부품 기술개발사업」은 물론 주요골자 및 지원대상도 달라 각기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낙후된 국내 부품산업을 육성하고 전자제품의 국산화율을 제고해 산업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품산업 발전전략이 각기 다른 부처에서 다른 이름으로 포장돼 잇따라 발표되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이같은 사례는 다른 경우에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산업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산자부가 「비메모리 반도체산업 육성방안」을 기회있을 때마다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정통부 역시 틈틈이 「정보통신용 비메모리 반도체산업 육성」을 강조하며 또 다른 지원시책을 발표하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각기 다른 부처의 부품산업 육성 및 지원책이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거나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 부처의 정책발표를 바라보는 관련업계의 시각은 이와는 상당한 거리

가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산자부와 정통부의 잇따른 부품산업 육성책 발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부처 이기주의」 「부처간 주도권 다툼」을 보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며 『주무부처를 일원화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거나 서로의 업무분담 및 역할구분을 명확히 해 정책의 중복·혼선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또 『정부가 부품·소재산업의 발전을 위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과 더불어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정책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10년 전부터 부품·소재산업 육성정책이 수도 없이 발표됐으나 그 가운데

뚝심있게 제대로 추진된 정책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 민족의 기질이 반영되기라도 한 듯 그동안 획기적인 것처럼 발표된 부품·소재산업 육성책들이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일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 「장밋빛 청사진 따로, 부품업계 현실 따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는 부품·소재산업 육성책도 그야말로 공염불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물론 부품·소재산업의 발전 및 부품국산화율 제고를 통한 무역수지 개선은 정부정책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일관되고 지속적이며 구체성을 담보한 지원정책은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으로 세계시장을 뚫고 나가려는 부품업체들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뿐더러 부품·소재산업의 발전을 위한 훌륭한 촉매제이자 방향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부품·소재산업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유효적절한 정부정책을 마련, 시행하는 것이야말로 부품·소재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렇기에 그동안 정부가 부품·소재산업 육성에 기울여온 관심은 각별하고도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이제 정부는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부품·소재산업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정부정책을 다시 써야 한다.

<김성욱기자 sw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