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의 컴퓨터에서 입는 컴퓨터로’
포스트 IT 시대의 주역은 입는(wearable) 컴퓨터다. 집채만한 크기의 애니악이 등장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PC는 책상 위를 떠나 사용자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PDA를 비롯한 모바일 컴퓨터 장치는 멀티미디어 환경을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가상현실로 대표되는 미래형 멀티미디어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주역으로 웨어러블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지버노트와 비아 등의 업체가 초기 단계의 웨어러블 컴퓨터를 상용화했으며 사용자 편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업계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3년 이후에는 웨어러블 컴퓨터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DC는 웨어러블 컴퓨터에 대해 “착용할 수 있고 그 상태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고안된 모든 기능을 갖춘 PC”라고 규정한다.
전자우편 전송이나 인터넷 접속, 일정 관리와 같이 일부 기능에 초점을 맞춘 모바일 컴퓨터 장치에 비해 웨어러블 컴퓨터는 PC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기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웨어러블 컴퓨터는 PC처럼 명령을 내리는 입력 장치와 데이터 연산과 저장을 담당하는 본체, 그리고 그 결과를 나타내는 출력 장치로 구성된다. 하지만 형태는 PC와 전혀 다르다. PC는 상자 형태의 본체와 키보드, 마우스 등의 입력장치, 모니터로 대표되는 출력장치로 이뤄진다. 반면 웨어러블 컴퓨터의 본체는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되고 입력 장치도 주로 음성인식을 위한 마이크가 이용된다. 출력 장치는 마이크 일체형인 헤드폰과 고글처럼 머리에 쓰는 HMD(Head Mount Display)를 사용한다.
◇현황=웨어러블 컴퓨터의 시초는 멘티스시스템이 출시한 인터액티브 솔루션이다. 하지만 이 제품은 웨어러블 컴퓨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커서 곧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현재 웨어러블 컴퓨터를 생산하고 있는 업체는 미국의 지버노트와 대만의 비아, 그리고 일본의 히타치제작소 등이다.
지버노트의 웨어러블 컴퓨터인 모바일어시스턴트 시리즈는 98년부터 개발돼 현재 모바일어시스턴트Ⅳ까지 나온 상태다. 이 제품은 펜티엄Ⅲ 366㎒ CPU를 기반으로 하는 본체에 HMD, 그리고 IBM의 음성인식 소프트웨어인 비아보이스를 이용한 음성 입력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음성입력을 보조하는 장치로 팔목에 올려놓는 키보드, 터치 스크린, 핸드헬드 키보드 등도 있다. 이 회사는 IBM과 협력해 올해 내에 모바일어시스턴트Ⅴ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 제품에는 위성위치측정시스템(GPS)과 음성데이터통합(VoIP) 등의 기능이 추가될 방침이다.
인체공학을 강조한 비아의 ViAⅡ는 작고 가볍게 만들어서 장시간 착용해도 불편함이 없게끔 설계되었다. 또한 음성 명령에 의해 작동이 가능하며 핸드헬드 터치 스크린 입력 장치도 갖추고 있다.
히타치제작소의 웨어러블 컴퓨터는 허리나 가슴 부위에 부착 가능한 손바닥 크기의 본체와 이마에 고정시키는 한눈으로 보는 소형 디스플레이어, 한 손으로 움직이는 마우스 등으로 구성된다. 총 무게는 310g이며 TV 리모컨처럼 무선으로 조작한다. 운용체계는 윈도CE이고 가격은 25만엔 정도다.
아직까지 웨어러블 컴퓨터는 음성인식이 가능한 헤드세트보다는 미니 키보드 입력 방식을 택하고 있어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밖에 IBM·참스테크놀로지·서커스시스템스 등도 웨어러블 컴퓨터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IBM은 2년 전부터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물론 상용화하지는 않았다. IBM은 신제품 출시보다 지버노트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서커스시스템스는 올해 말 최초로 웨어러블 컴퓨터를 출시할 예정이다. 서커스시스템스는 이 제품이 기존 웨어러블 컴퓨터에 비해 30% 정도 낮은 가격인 1600달러 선이라고 밝혔다.
◇인터페이스=웨어러블 컴퓨터는 인터페이스가 중요하다. PC의 인터페이스가 텍스트 기반에서 그래픽 기반으로 바뀌면서 한 차례 변화를 가져왔다면 웨어러블 컴퓨터는 사람의 오감을 이용한 인터페이스로 컴퓨팅 환경의 혁명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보통 웨어러블 컴퓨터의 인터페이스는 HMD,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 컴팩트 키보드, 음성 인식 등이다. 그 가운데 현재 음성인식과 HMD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대각선의 길이가 2인치 남짓의 헤드세트 디스플레이는 필요 없는 기능과 부품을 과감히 줄여서 전체적으로 핸드헬드의 터치패드보다 더 가볍고 소모 전력을 줄였다. 또한 실제로 디스플레이는 일반 데스크톱 모니터를 먼 거리에서 바라본 듯한 형상을 만드는데 이 가상의 상은 마이크로 디스플레이와 확대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음성 인식 기능은 웨어러블 컴퓨터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아직 실질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어휘에 한계는 있지만 점차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오감인터페이스 등장의 전주곡이다.
오감인터페이스란 사람의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을 이용한 인터페이스다. 현재 시각과 청각을 이용한 인터페이스는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촉각과 후각이 그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미각은 가장 늦게 적용될 전망이다.
가까운 일본은 지난해 말부터 총무성 산하에 오감정보통신기술연구회를 발족해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회에는 19명의 산학연 전문가가 활동하고 있으며 오감 정보의 융합 기술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정통부가 오감을 활용할 수 있는 차세대 정보단말기를 개발하기 위해 포스트PC 기술기획연구반을 발족했다.
정통부는 10년의 연구 기간을 정했으며 2004년까지 진화된 PDA, 2007년까지 웨어러블 컴퓨터, 2010년까지는 자연현상까지도 전달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오감단말기를 개발할 계획이다.
포스트PC 기술기획연구반은 정책기획분과, 오감정보처리분과, 소프트웨어분과, 하드웨어분과, 실시간통신분과 등 5개 분과로 구성되며 기획연구책임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채규 인터넷정보가전연구부장이 선정됐다.
◇과제=당분간 일반 소비자 수요보다는 기업 혹은 공공부문에서의 수요가 시장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자의 경우 항공기 유지 관리, 필드 데이터 수집, 보험사, 병원, 군대, 경찰, 소방서, 물류 관리 관련 업계가 주요 수요처로 보인다.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는 내년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는 참스테크놀로지가 웨어러블 컴퓨터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인터넷 월드 쇼(internet world show)라는 제목의 패션쇼를 실시해 대중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련의 행사는 프로모션적인 성격이 크다. 아직 웨어러블 컴퓨터는 대중적인 상품보다 특정 시장에 초점이 맞춰진 제품에 그치고 있다.
그 이유는 기존의 모바일 컴퓨터들이 소비자의 기호를 만족시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비자들은 현재 PDA나 고성능 이동전화에 익숙해지는 단계로 이를 뛰어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휴대폰에 익숙해져 있어서 이들의 까다로워진 취향을 맞추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웨어러블 컴퓨터의 성장은 무선인터넷의 확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광대역 무선 인터넷을 통해 대용량 데이터를 자유롭게 주고받게 되면 아무래도 사용자 편의성이 주목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웨어러블 컴퓨터 업체가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제품에 포함시키면서 얼마나 편리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또 고성능 노트북의 두배에 달하는 높은 가격과 상시 착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크기, 그리고 소비자의 교육과 애플리케이션의 절대적 부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앞으로 업체들이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가격 경쟁을 벌일 것이며 IBM의 초소형 하드디스크인 마이크로드라이브(micro drive)처럼 초소형 부품이 나온다면 웨어러블 컴퓨터의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하드웨어적인 기술 발전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이 동반된다면 예상보다 웨어러블 컴퓨터 시대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전망=IDC는 지난 10년간 거북이 성장을 거듭해온 웨어러블 컴퓨터 시장이 향후 2년 안 급격한 기술 발전을 이룩하고 그 후 10년 안에 대중화를 일궈낼 것으로 전망한다.
신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기존의 조심스러운 시장 접근에서 벗어나 모바일 PC와 가격면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동시에 새로운 디자인으로 무장한 신생 업체들의 참여는 시장에 활력과 경쟁 체제를 불러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의 호기심과 구매욕을 자극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업 시장이 아니라 일반 소비자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음성 인터페이스와 같은 관련 기술을 더 세련되게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IDC는 웨어러블 컴퓨터의 궁극적인 수요처는 소비자 시장이 되겠지만 적어도 향후 5년간은 기업 시장이 여전히 그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비록 일각에서는 느린 성장이 PDA와 같이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새로운 기술의 확대에 가려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보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컴퓨터를 조작하면서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경쟁력을 유지시켜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웨어러블 컴퓨터 시장은 2001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1만9700대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미국이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 시장은 연평균 209% 성장하여 2004년에는 57만9000대에 9억달러 시장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