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재조명](31)IT업체들의 `진흙탕 싸움`

 국내외 시장에서 한국 IT업체들이 가장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경쟁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IT산업 본고장인 미국과 경제 대국 일본 업체들은 우리 기업들이 반드시 극복해야할 경쟁 대상임은 분명하다. 대만 등 동남아국가들과 잠재력 있는 경쟁자로 부상할 중국 또한 주목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상대는 다름아닌 같은 한국 업체들이다.

 국내 업체끼리 과당경쟁이 벌어지면 가격은 순식간에 제조원가 이하로 떨어지고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면서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한다.

 더욱이 과당경쟁은 국경을 초월하고 대기업, 중소기업도 구분하지 않는다. 가전, 통신, 부품, 소프트웨어 등 전체 IT영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진행된다. 피를 흘리는 출혈 경쟁이니, 진흙탕 속의 이전투구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다.

 그래서 수출 업체들 대부분은 “국내 업체보다는 오히려 해외 업체가 우군으로 느껴질 정도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라며 과당경쟁의 폐해에 진저리를 친다.

 그렇다고 국내 업체들 스스로가 과당경쟁이 결국은 제살을 도려내는 처사임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문제는 가장 경계하고 되풀이해서는 안될, 이 고질적인 병폐를 막을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국내 영업 관행으로 볼 때 기업들 스스로가 공동 보조를 맞추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나 관련단체가 업체 사이를 오가며 진땀을 흘려 보기도 하지만 쉽게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더욱이 과당경쟁은 국내 업체끼리의 감정대립을 유발시켜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문제 해결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게 마련이고 그 원인을 찾아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과당 경쟁의 원인은 다양하다. 심지어 해당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우선, 기업 내부적인 원인부터 살펴보면 무엇보다 독자적인 상품 개발과 시장 개척 노력의 부족을 들 수 있다.

 고부가가치 상품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실질 경쟁력을 높여 채산성을 높이기보다는 ‘남이 가면 나도 따라간다’는 식의 안일한 자세가 과당경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해외 업체들은 가격담합으로 보일 정도로까지 과당경쟁을 지양하는 데 반해 국내 업체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밀고 들어오기 일쑤다.

 어떤 기업이 상품을 개발해 잘 팔리는 것 같으면 너도 나도 달려들어 똑같은 상품을 복사해내기 시작한다. 이런 경우 선발 업체는 시장을 지키기 위해 공급과잉 상태에서도 생산량을 늘리고 후발업체는 시장을 뺏기 위해 원가 이하의 출혈 공급을 감행한다. 이어서 대부분의 업체가 덤핑 대열에 가세하게 되면 ‘공멸’을 향한 과당경쟁의 일반적인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국내 기업들 사이에 “해외에서 수주활동을 벌일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다른 국내 업체에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는 불문율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 수출 담당자들은 현재 벌이고 있는 해외 활동에 대해 무조건 입을 다문다. 파리 떼가 끌으면 될 일도 안된다는 피해 의식이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럼에도 과당경쟁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 없이 모든 책임을 상대 업체에 떠넘기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는 과당경쟁을 원하지 않고 실제로도 하지 않고 있는데 상대 업체가 치고나와 시장질서를 흐린다”는 식이다. 상대업체만 잘하면 과당경쟁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특정 지역이나 특정 바이어에만 집중하는 것도 과당경쟁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다.

 동남아나 중국이 뜬다고 하면 이 지역에 우르르 몰렸다가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고 썰물처럼 빠져 나오는 것이 우리 기업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여기에는 우리 민족 특유의 ‘냄비 근성’도 크게 작용한다. 외국 업체나 바이어들도 이같은 특성을 잘 알고 이를 교묘히 활용해 가끔씩은 농간을 부리기도 한다. 국내 기업을 오가며 가격 싸움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다.

 결국, 과당경쟁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을 벼랑으로 몰고 간다.

 국제 경쟁력이 그리 높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해외 공동진출이나 상호 정보교환 등을 통한 공동 대응노력은 더욱 절실하다. 분명한 것은 수십년 넘게 되풀이해온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한국 IT산업의 매래도 더이상 기대할 할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