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캄보디아의 한 호텔 로비에 앉아서 고민하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이걸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을 많이 했죠. 당시는 프놈펜 시내 어디를 둘러봐도 IT시장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웠거든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지난 일이 됐네요.”
27일 저녁 9시. 프놈펜 캄보디아나호텔에서 만난 한국컴퓨터통신 강태헌 사장(45)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팽팽하게 긴장돼 있었지만 계약식을 치르고 난 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2년간의 지루한 기다림 끝에 찾아온 달콤한 휴식이라 그럴까.
그러나 휴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캄보디아 정부와 행정전산망 프로젝트 계약을 성사시키고도 “이제 시작일 뿐 책임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며 다시 자세를 가다듬는다. 양국 정부간 협약사항이 있고, 한 나라의 중추신경이 되는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은 만큼 마음을 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타고난 비즈니스맨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실 강 사장이 캄보디아 프로젝트를 위해 벌인 노력은 눈물겹다. 한달에 일주일가량 캄보디아를 방문한 것을 비롯해 전체 시간의 40% 이상을 이 프로젝트에 할애했다. 현지에서 세미나를 열고, 캄보디아 인력을 국내에서 교육시키고, 수십명의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를 만나 설득하고, 한국정부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컴퓨터통신이 어떻게 캄보디아에 관심을 갖게 됐고 또 중소 벤처기업으로서 어떻게 다른 나라의 행정전산망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었는지에 큰 궁금증을 갖고 있다. 강 사장이 캄보디아에 눈을 돌린 것은 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강 사장이 결심한 것은 아시아 시장, 그것도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어차피 힘들다면 앞으로 잠재성과 파급력이 큰 시장에서 승부를 본다는 전략이었다.
당시 캄보디아는 내전에서 막 벗어나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때였고 그 핵심이 IT를 통한 글로벌화였다. 그러나 99년 당시 캄보디아는 전쟁으로 인한 많은 손실로 차량, 부동산, 주민 등에 대한 데이터나 통계가 유실되거나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세금이나 치안 등의 행정에 많은 차질이 있던 때였다. 또 정부내 네트워크 및 커뮤니티가 형성이 안돼 캄보디아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행정업무에 상당한 불균형이 빚어졌다.
따라서 강 사장은 캄보디아 IT전략의 우선과제는 행정전산망이 될 것을 확신하게 됐으며 이를 근간으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갔다. 특히 당시 캄보디아에는 컴퓨터나 가전, 통신기기는 일부 보급이 돼있었지만 SW, 그 중에서도 정보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DB는 개념조차 제대로 없었다. 전세계에서 DB업체라고 해봐야 오라클, IBM, MS 등 손에 꼽을 정도인데 이 중에서 아시아 지역내 DB는 자사의 유니SQL밖에 없다는 데서도 용기를 얻었다.
한때 일본에서 교육센터 건립 등을 내세워 1억5000만달러 가량을 지원하겠다고 나왔을 때에는 식은 땀이 흘렀을 정도로 긴장했다고.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공세를 퍼부을 경우 이를 방어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일본과 프랑스는 지금도 캄보디아내 사회간접자본의 건설 및 증축, 유적지의 개보수 공사에 있어 가장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정부는 단순히 외형적인 투자보다는 자국의 핵심적인 국가운영 시스템을 선진화할 수 있는 SW적인 부분에 주목했다. 여기에 진출 초기부터 유니SQL캄보디아라는 현지법인을 세워 큰 신뢰감을 심어준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가능성을 믿고 2년 이상 인내하면서 하나하나 다져나갔다는 점이다.
강 사장은 “직원들이 열심히 뛰었고, 정부의 IT외교가 큰 힘이 됐으며 현지 파트너를 잘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라며 한사코 자신의 공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이번 IT수출의 공로를 인정받아 30일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묻자 “이제 정말 시작일 뿐인데 너무 큰 상을 받는 것 같다”며 겸손해했다.
강 사장은 여러 면에서 드러내기보다는 안으로 다지는 스타일이다. 그에게서 한번도 과장된 표현이나 흥분한 모습을 찾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강 사장은 이미 있는 것을 취하는 것보다는 없는 것을 만들어낼 줄 아는 승부사 기질이 있다. 미국 유니SQL사의 국내 총판에서 97년 소스코드와 판권을 인수해 자기 제품으로 만든 것이나 IMF이후 부도위기를 맞고도 보란 듯이 기사회생한 것, 이번 캄보디아 행정전산망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것까지 모든 행적이 이것을 말해준다.
한국컴퓨터통신을 들여다보면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SW업체로서 10여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연륜을 갖고 있으면서도 초기 멤버들이 거의 다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들어온 사람은 봤어도 나간 사람은 못봤다는 것이 이 회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말이다. 어느 직원이 5년 근속이라며 자랑삼아 얘기했다가 면박을 들었을 정도로 8∼10년동안 이 회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특히 97∼98년은 IMF여파로, 99∼2000년은 닷컴열풍으로 대부분의 기업이 인력 물갈이가 심한데 반해 한국컴퓨터통신은 거의 굴곡이 없었다.
“사장으로서 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자 강 사장은 “회사가 심플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답했다. 제품도 DB인 유니SQL밖에 없고 비전도 DB회사로서 성공하는 것이어서 직원 모두가 자신의 할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많이 벌리고 한눈팔고 했다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놓쳤을테지만 단순한 것이 직원의 힘을 모으게 한 비결이 됐다고. 여기에 유일한 국산DB, 아시아 지역내 유일한 DB라는 자긍심이 보탬이 됐다.
강 사장은 이쯤에서 한가지 CEO론을 꺼낸다. 사장은 너무 똑똑해서는 안된다는 것. 윗사람이 너무 많이 알면 아랫사람이 주눅들어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론이다. “사장이 적당히 멍청하니까 직원들이 알아서 잘 해주던데요”라며 껄껄 웃는다. 또 예의를 아는 조직이 돼야 한다면서 사장부터 직원에 예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강 사장은 10년후의 한국컴퓨터통신의 모습에 대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기업이 돼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처럼 견고한 회사를 만들어 놓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언젠가는 욕심을 버리고 회사를 직원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한다. 모든 일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하나도 이뤄질 수 없는 만큼 회사도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강 사장의 파이팅을 기대해본다.
<프놈펜(캄보디아)=조인혜 기자 ihcho@etnews.co.kr>
<프로필>
56년 전북 군산 출생
83년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83∼88년 한국통신 근무
88년 2월 한국컴퓨터통신 설립
가족관계: 2남1녀
취미: 독서(최근 읽은 서적-차이나쇼크, 평설열국지)
종교: 천주교
좋아하는 운동: 골프
주량: 소주 1병 가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