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반도체 전쟁은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일어난다. 메모리업체들의 생존다툼도 다가올 전쟁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하다.
사실 비메모리는 메모리에 비해 시장이 크고 제품도 다양해 그다지 경쟁이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돌변했다. 일본업체를 중심으로 메모리업체들이 대거 비메모리 시장에 밀려들고 있다. 정보기술(IT)의 축이 PC에서 각종 인터넷 응용기기와 정보통신으로 바뀌면서 고정되다시피 했던 품목별 영역도 붕괴됐다.
바야흐로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신흥강자의 급부상=부동의 세계 1위, 비메모리반도체 산업의 대표주자 인텔의 독주에 제동이 걸렸다. AMD·트랜스메타가 아니다. 차세대 정보기기에 들어가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지적재산(IP)을 개발, 라이선스하는 영국 ARM이다. 완제품 형태의 PC용 CPU가 아니라 임베디드(내장형)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는 호환성 높은 마이크로프로세서 IP로 인텔 따돌리기에 나섰다.
삼성전자도 PDA·이동전화단말기·세트톱박스 등 차세대 시스템 개발에는 ARM코어를 기본 장착한다는 방침아래 최신 ARM10까지 라이선스한 상황이다.
유럽계 ST마이크로도 비메모리시장의 신흥주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반도체시장에서 6위를 차지했던 이 회사는 올 상반기에는 한단계 또 올랐다. 이유는 하나. DVD·스마트카드·세트톱박스 등 신개념 디지털 정보기기의 핵심칩으로 라인업을 재편, 혹한을 피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디지털가입자회선(DSL)시장에서는 비라타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외 ADSL모뎀칩세트의 80% 이상을 이 신생업체가 독점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팹리스 강점을 살려 과감한 가격정책으로 DSL시장을 쥐락펴락한다.
◇신규 진입하는 대형 업체들=메모리시장의 1위 삼성전자가 비메모리시장 진입을 선언했다. 차세대 시스템온칩(SoC)을 중심으로 오는 2005년까지 비메모리시장에서 10위권내에 들겠다는 전략이다. 기술인력도 2배로 늘리고 자금과 정책의 중심을 집중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2’로 전세계 게임기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소니도 반도체시장을 넘본다. 64비트 프로세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초고속 3차원 게임기를 능수능란하게 만드는 만큼 핵심칩 기술도 이미 확보했다는 것. 소니는 이를 바탕으로 차세대 칩도 개발할 예정이다.
거대 IBM도 은밀하나 무섭게 움직이고 있다. 실리콘온인슐레이터(SOI)·구리칩기술·나노반도체 등 미래의 핵심기술은 모두 IBM의 손아귀에 있다. 고주파(RF) 파운드리 서비스를 바탕으로 무선통신 핵심칩 기술도 개발중이다. IBM은 서버사업뿐만 아니라 핵심칩 시장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통해 최후의 승자를 꿈꾸고 있다.
여기에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윈본드, 뱅가드 등 일본과 대만업체들이 D램사업에서 손을 떼는 대신 스템칩과 파운드리 쪽으로 방향을 틀어 기존 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관건은 SoC=비메모리 반도체시장의 질서재편은 이미 시작됐다. 이전과 달리 경쟁력 있는 업체들의 본격적인 가세로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비메모리 시장에서도 역시 1, 2위 업체만 살아남는다. 물론 인텔이나 TI, 모토로라 등 선두업체들은 기득권을 누릴 수 있으나 달라진 IT환경에서 계속 1등을 유지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제는 누가 차세대 IT 표준기술을 선도하고 이에 맞는 시스템 기반의 핵심칩을 빠르게 내놓는가에 달렸다. 단지 부품만 공급하고 제품개발은 시스템업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 개발툴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해야 한다.
특히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경계를 없애는 SoC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모든 반도체업체가 1대1로 맞상대하는 무한경쟁구도가 정착할 전망이다. 현 메모리 반도체시장과 마찬가지로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합종연횡이 활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나락에 빠지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인텔, TI, 모토로라 등 비메모리 반도체 강자들도 이처럼 급변하는 새로운 시장흐름에 대응하지 않고는 질서재편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