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할리우드 잠재운 `충무로의 힘`

 

 국내 영화계에 있어 2001년은 명암이 크게 엇갈리는 한해였다. 몇몇 한국영화가 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대박 흥행을 이어가는 가운데 비상업영화, 이른바 예술영화는 우리 영화든 외화든 철저히 외면당했다.

 산업외형은 급격하게 성장한 한해였지만 문화적으로는 극도의 편향성이 나타남으로써 영화계 전망을 두고 낙관과 비관이 크게 엇갈리기도 했다.

 일부 영화학자들은 이를 두고 ‘거품론 대 거풍론’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올해 우리 영화 흥행대박 신화는 ‘친구’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영됐던 ‘공동경비구역 JSA’의 바통을 이어받아 3월초 개봉된 이 영화는 7월까지 장장 5개월간 장기 레이스를 달리며 전국 관객 800만명 돌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친구’는 특히 국내 관객층의 저변을 크게 넓히면서 폭발적인 흥행세를 나타냈다. 그동안 국내 극장가 주 관객층은 20대 초반의 여성층인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 작품만큼은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관객들이 고루 극장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의 흥행은 우리 영화 시장점유율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상반기 동안 한국영화는 ‘친구’의 흥행에 힘입어 39%의 점유율을 나타냈으며 이에 따라 스크린쿼터제도를 놓고 새로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간 영화계에서는 우리 영화가 시장점유율 40%를 유지할 때까지 스크린쿼터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영화 성장은 점유율 39%선에 머물지 않았다. 하반기 들어 흥행작이 대거 쏟아지기 시작했으며 연말까지 잠정 집계된 우리 영화 시장점유율은 50%대까지 치솟는 사상초유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친구’에 이은 히트작으로는 ‘신라의 달밤’과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흑수선’ ‘화산고’ ‘두사부일체’ 등이다. 지난 9월 이후 11월 말까지 단 한주를 제외하고 우리 영화가 국내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특히 이들 영화 가운데 전국 400만명 이상을 동원한 대작들이 줄을 이었다는 것도 그간 우리 영화시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로 평가됐다. 이 기간 동안 한국영화의 기세를 꺾은 외화는 성룡 주연의 ‘러시아워2’ 단 한편. 이 영화만이 지난 9월 22일과 23일 주말 이틀간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 영화의 흥행 이면에는 배급 독점, 스크린수 독점이라는 폐해가 작용했다. 지난 1년간 영화흥행 경향의 가장 큰 특징은 ‘된다 싶은 영화’의 경우 전국 상영의 ‘날개’를 크게 펼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국 200여개 스크린 개봉은 이제 흔한 얘기가 돼버렸으며 전국 극장가는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 코리아픽쳐스 등 서너개의 메이저 배급사에 의해 완전히 독식되는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집중됐던 6월에서 8월 두달 동안 전국 극장가는 ‘진주만’ 등 외화와 ‘엽기적인 그녀’ 등 우리 영화를 합쳐 기껏해야 4∼5편의 영화가 전국 스크린수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이상 현상이 지속됐다. 이에 따라 군소영화, 예술영화들은 전국적으로 단 1개관에서만 상영되거나 몇개 스크린을 간신히 확보했더라도 1주 이상 상영되지 못하는 등 피해사례가 속출했다.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 같은 경우, 프랑스 현지에서는 4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빅 히트작인데다 국내 관객의 호응도도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을 독점한 대박영화의 벽을 뚫지 못했다. 이런 류의 영화는 하반기로 갈수록 점점 그 편수가 많아졌다. 문승욱 감독의 ‘나비’를 비롯해 장현수 감독의 ‘라이방’,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 송일곤 감독의 ‘꽃섬’ 등은 각종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큰 호평을 이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극장개봉에서는 철저하게 실패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외화 가운데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아모레스 페로스’ ‘원더풀 라이프’ 등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된다. 이에 따라 일부 관객을 중심으로 ‘좋은 영화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에서부터 재개봉 움직임이 일기 시작해 결국 서울 등지에서 다시 상영됐으며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제작사인 명필름이 4000만원을 들여 극장을 대관함으로써 ‘조기 종영’의 폐해를 피해나가기도 했다.

 ‘친구’ 이후 스크린수를 독점하며 흥행 레이스를 이어 나갔던 영화에서 ‘조폭 신드롬’이라는 신종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실제로 이들 영화의 상당수가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차용한 작품들로서, 영화가 히트함에 따라 TV 토론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들 영화의 사회적 부작용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극장가에서는 멀티플렉스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나타냈다. 국내 최대의 멀티플렉스 그룹인 CGV가 구의동 CGV11의 성공을 발판으로 부산 서면의 CGV 극장 등 전국적으로 10개의 멀티플렉스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나서기도 했다. CGV외에 단성사와 피카디리, 대한극장 등 기존의 유명 단관극장도 멀티플렉스로의 재건축에 나섰고 이 중 대한극장의 경우 8개 스크린를 갖춘 신형 극장으로 재개관됐다.

 영화계의 신구간 갈등은 여전히 계속됐다. 원로 영화인을 대표하는 영화인협회와 비교적 젊은 소장파 영화인이 지지하는 영화인회의는 지난 4월 공동으로 대종상 영화상 시상식을 개최했으나 수상 결과를 놓고 벌어진 논란으로 불신의 늪만 깊어진 꼴이 됐다. 대종상 파문은 결국 영협의 유동훈 이사장과 영화인회의의 이춘연 이사장 모두를 자진 사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영화배우 가운데는 최민식, 송강호, 전도연, 이미연, 이영애 등이 톱스타급으로 부상하며 인기혼전을 보인 한해였다. 여배우 가운데 절대 강자로 분류되던 심은하는 결혼 파동속에서 영화계를 은퇴했다. 인기 보증수표라는 한석규는 단 한편의 영화도 찍지 않으며 정중동의 1년을 보냈다. B급 영화 ‘노랑머리2’에 출연한 성전환자 하리수는 영화의 흥행과는 별개로 큰 화제를 모았으며 그의 인기는 결과적으로 국내에 트랜스젠더 문화, 더 나아가 동성애 문화를 양성화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한때 전국 2만여개의 점포를 자랑했던 비디오 시장은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들 만큼 격감했으며 대신 DVD가 대체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톡톡히 보여준 한해였다.

 오동진(FILM2.0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