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웅 조이맥스 사장 ceo@joymax.com
4년 전 미국 E3 전시회에 참가하고 시간을 내서 근처 쇼핑몰에 있는 비디오 게임숍에 들린 적이 있다. 신종 게임들을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저쪽에 낯익은 얼굴의 동양인 아저씨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평범한 차림이라서 혹시나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보았는데 바로 ‘슈퍼마리오’의 대부 ‘미야모토 시게루’였다. 사인도 받고 악수하고, 정말로 그때의 흥분된 기분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것은 이제 한국도 게임산업의 위상만큼 개발자들이 스타가 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시 E3쇼의 남코 신작 발표회에서도 제일 먼저 화면에 떠오르는 이름은 게임을 만든 감독의 이름이었다. 영화도 마케팅이나 주연배우나 다 중요하지만 흥행에 근간을 이루는 요소는 감독이나 기획자의 판단과 역할인 것처럼 게임도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고 풍부한 개발 경험과 노하우로 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스타 개발자가 진정으로 필요하다.
지금 한국의 게임산업은 개발자는 많은데 진정한 감독이나 기획자, PM 등은 존재하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로 가고 있다. 개발 경력 5, 6년 이상된 경험많고 유능한 개발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개발의 규모나 예산은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으나 거기에 걸맞은 구조의 개발진 구성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개발자의 양적 팽창에 비해서 개발자의 질적 성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게임산업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1000여개가 넘는 게임회사들이 경쟁을 하기에는 비좁은 시장이다. 또 대부분의 회사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기에는 너무나 영세하고 그나마 몇 년을 넘기는 회사도 드물다. 그래도 새로운 회사들은 자꾸 만들어진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실패를 경험하는 회사 대부분의 사장들이 한때 촉망받던 개발자 출신이었다는 사실이다. 본인이 원해 창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발자로서의 성공보다는 사장으로서의 성공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사회적인 구조가 그들을 창업으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꼭 개발자가 사장이 돼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실력이 한창 무르익는 순간에 필드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구조가 돼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외국의 경우 성공한 게임회사에는 언제나 스타 개발자가 존재한다. 게임회사로서의 성공 여부가 기실 개발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회사나 사장에게만 비쳐지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를 이제는 개발자들에게도 비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게임업계에 성공한 스타 개발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는 두루 헤아리기도 힘들 것이다.
우선 개발자들이 스타 개발자들의 모습을 통해 개발자로서의 자신의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과 비전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개발자들의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심과 자부심으로 이어지면서 자기 분야에 대한 기술개발에 더욱 노력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또 스타 개발자들의 인지도와 브랜드 가치가 상품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다. 닌텐도사의 ‘미야모토 시게루’처럼 이제 유저들은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넘어서 누가 만들었느냐를 중요한 구매요건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 개발자가 개발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어떤 마케팅보다 제품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얘기다.
이제 한국의 게임산업은 게임방송국, 게임신문, 게임대학에 게임 전문선수가 나오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텃밭에 진정으로 한국의 게임제작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스타 개발자들이 나오기 시작해야 한다. ‘크레딧 타이틀’에 올라간 이름이 누구인지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의 이름만 가지고도 제품의 품질을 보증할 수 있다는 스타 개발자들이 많이 나올 때 진정 한국의 게임개발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