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일부터 SK텔레콤의 이동전화 가입자들은 ‘011·017’ 식별번호를 그대로 유지한채 KTF나 LG텔레콤으로 옮겨 탈 수 있다.
요즘같은 불황에 팍팍한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한달 1만원이상 통신요금을 절약할 수 있는 쏠쏠한 혜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셀룰러(011·017)에 비해 PCS(016·018·019)의 통화품질이 다소 떨어지기도 했지만, 근래 들어서는 별 차이도 없다. 가입업체 변경이라는 약간의 번거로움은 감수해야 하나, 최근 정부가 ‘원스톱’ 변경절차를 마련해 가입자들의 편리함도 최대한 배려했다. 6개월후인 내년 7월1일부터는 KTF 고객들도 기존 번호를 그대로 갖고서 SK텔레콤이나 LG텔레콤으로 바꿀 수 있고, 1년뒤인 2005년 1월부터는 019 가입자들마저도 자유롭게 가입업체를 변경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이때부터는 사업자 식별번호의 의미가 사라지고, 번호는 유지한채 서비스 수준과 요금을 꼼꼼히 따져 사업자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번호이동 자유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시대가 눈 앞에 성큼 다가섰다. 소비자들에게는 번호를 똑같이 쓰면서도 사업자를 골라 잡을 수 있는 권리가, 통신시장에는 선후발 사업자간의 공정한 시장경쟁 환경을 가져다 줄 전기가 마련되는 셈이다. 제도 도입이 거론된후 지난 1년 가까이 번호이동성은 엄청난 산고를 겪었다. 소비자 편익과 통신시장 유효경쟁 환경조성이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업자들이 식별번호 마케팅에 쏟아부었던 엄청난 노력 때문이다. SK텔레콤이 이동전화시장 부동의 1위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번호의 자부심이 다르다”는 차별화 전략이 큰 몫을 했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번호이동성 제도는 도입과정에서 갖은 진통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당초 계획대로 2개월후면 본격 시행된다. 때마침 정보통신부도 최근 번호이동성 시행에 따른 정부 고시안을 최종 확정하고 확고한 정책의지를 밝혔다. 정통부가 마련한 고시안의 골자는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행 초기부터 실효성을 지닐 수 있도록 사업자 변경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했다는 점이다. 번호이동 신청·등록절차를 간소화해 이동전화 가입자가 사업자를 바꾸고 싶을 경우 원스톱으로 변경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전산시스템과 업무처리 절차를 개선했다.
번호이동성 제도 시행고시가 확정, 발표되면서 이제 이동전화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입자 이탈이 예상되는 SK텔레콤은 시장수성을 위해, 그동안 마케팅 싸움에 밀렸던 KTF·LG텔레콤은 011·017 가입자 유치에 총력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말그대로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번호이동성 통신대전이 예고된 형국이다. 당장 유리한 쪽은 가입자 474만명으로 최하위 사업자인 LG텔레콤. 번호이동성 시행시기가 LG텔레콤은 가장 늦은 1년뒤이기 때문이다. LG텔레콤은 만년 하위에 머물러 있는 현재의 시장구도(점유율 14.3%)를 뒤집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다. 최근 국민은행과 손잡고 ‘뱅크온’ 서비스를 선보이며, 전국 은행 지점망을 통해 대대적인 가입자 유치전에 나서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집중적인 유치대상 가입자는 역시 1800만에 달하는 SK텔레콤의 고객 기반. LG텔레콤은 최고의 고객서비스 회사라며 광고전을 전개하는 한편 자사 직원들과 협력사를 총동원, SK텔레콤의 가입자 정보를 수집하고 사업자 변경을 권유하는 등 전방위 공세도 펼치고 있다. 그동안 통화품질에 대한 불만에 시달려왔던 어려움도 이번 기회에 완전히 털어낼 작정이다. LG텔레콤은 올해에만 5000억원 가까이를 책정해 cdma 1x, 무선인터넷, 3세대(G) 동기식(EV-DV) 등 네트워크 환경 전반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내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예산을 들여 시스템을 정비하기로 했다. 반대로 SK텔레콤은 가입자 유지에 전력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언제부턴가 TV에서 SK텔레콤의 번호광고가 사라지고 기업이미지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011·017 번호 대신 SK텔레콤 고객이 진정한 ‘프리미엄급’ 가입자임을 내세우려는 것이다. 특히 SK텔레콤이 자사 가입자들의 강력한 응집력과 서비스 차별화, 기업 이미지 개선작업 등을 총망라한 ‘레인보우’ 프로젝트는 사실상 번호이동성 대책의 결정판이다. 레인보우는 SK텔레콤 고객으로서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물론, 대외적인 자부심도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캠페인 전략이다.
KTF는 SK텔레콤과 LG텔레콤의 물고 물리는 접전 사이에서 최대한의 어부지리를 얻고자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이고 있다. 내년 6개월간은 번호이동성 시차제로 SK텔레콤에서 이탈하는 고객들이 LG텔레콤이 아닌 KTF로 옮겨올 수 있는 묘책을 궁리하는 분위기다. 역시 방법이라면 서비스 수준이 SK텔레콤과는 같지만 LG텔레콤보다 낫다는 이미지를 심는 마케팅 전략. 요금 또한 SK텔레콤보다 저렴하다는 점을 빼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중수 사장이 강력한 의지로 추진중인 ‘굿타임 경영’ 전략도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 전체를 고객 위주로 뜯어 고쳐, 가입자 충성도를 높이려는 프로그램이다. KTF로서도 올 1년간 저조했던 가입자유치·매출실적을 만회할 찬스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동전화 사업자들의 치열한 마케팅 싸움에도 불구하고 가입자 대규모 이동 등 시장구도의 급격한 변화는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사업자를 바꿀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은 갖춰졌지만, 당장 단말기 교체에 따른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번호이동성 제도를 시행중인 유럽·호주 등지에서도 단말기 교체 비용은 사업자 변경의 중요한 선택기준이었던 점이 이를 입증한다. 과거 해외시장에서는 사업자 변경의 가장 큰 변수가 이동전화 요금과 단말기 교체비용, 번호이동 처리절차의 편리성 등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가운데 이동전화 요금은 이미 선후발 사업자간에 1∼2만원 가량의 차이로 굳어진 상황이고, 정통부의 시행고시 제정으로 번호이동 처리절차도 매우 간소화됐다. 문제는 대당 수십만원에 달하는 핸드폰 구입비용. LG텔레콤은 자사에 한해 예외적인 단말기 보조금 지급허용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지만, 법으로 금지된 조항을 특정 사업자에게만 유리하게 돌리기는 기대하기 힘든 일. LG텔레콤이 자사 가입고객에게 핸드폰 구입 할부는 물론이고, 약정할인제를 도입하면서 최대한 비용부담을 줄여주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신증권 이정철 애널리스트는 “결국 사업자들의 마케팅 역량과 서비스 품질은 기본이고 통신요금과 핸드폰 교체비용이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행돼 온 해외 시장에서는 유럽지역의 경우 가입자 이동율이 평균 1∼2% 수준에 그쳤고, 호주는 제도시행 1년후 3∼4% 이동율을 보였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