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신년특집]미래의 현장(기업 R&D)-삼성전자·LG전자

 바야흐로 기술 경쟁 시대다. 누가 먼저 선행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재빠르게 제품화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의 가장 큰 잣대로 떠올랐다. 게다가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이다. 아날로그로 대표되는 전통 패러다임이 사라지고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각 분야로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이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게 바로 연구개발(R&D)을 책임지고 있는 기술연구소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을 내다보고 기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소의 24시간을 들여다 봤다.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DM) 연구소

 경기도 수원시 매탄3동. 주변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몇 개의 평범한 건물이 보인다. 건물 외벽에 있는 삼성 로고와 이정표만이 삼성 소유임을 눈치챌 수 있게 해 준다. 겉모습은 평범하지만 이곳은 ‘기술의 삼성’을 만드는 숨은 주역이다. 삼성전자에서 ‘기술’을 좀 안다는 브레인은 모두 모여 있다. 삼성을 먹여 살리는 핵심 기술의 대부분도 이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 중에서도 유난히 투박한 건물이 바로 ‘DM연구소’다. DM그룹은 디스플레이·비디오·컴퓨터시스템·디지털 프린팅 등 크게 4개 사업부로 나뉜다. DM연구소는 4개 사업부의 R&D를 책임지고 있다. 기술기획팀 최영규 부장은 “DM연구소는 오디오·비디오 (AV) 기기에서 모니터, 데스크톱PC와 노트북PC, 프린터까지 다양한 디지털 하드웨어 R&D에 주력하고 있다”며 “선행 기술 확보와 일류 상품 개발이 연구소의 설립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곳 연구소는 엔지니어만 600여명에 달한다. 플랫폼·미디어·IT·AV 등 크게 4개 팀으로 세분화돼 있다. 지금 당장 시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제품보다는 최소한 2∼3년 앞을 내다 보고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먼저 그리고 정확하게’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게다가 이들의 경쟁 상대는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송동일 전무는 “최고를 지향하는 삼성의 이념답게 최고의 디지털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모든 연구원이 가지고 있다”며 “아마도 이런 책임감과 부담감이 기술 혁신을 이끄는 동력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이미 수많은 ‘월드 베스트’ 상품을 만들어 냈다. 삼성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대표하는 ‘DNIe 엔진’은 이 연구소에서 개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기술이다. 오디오 분야의 ‘DNSe 엔진’도 이곳 작품이다. 임베디드 운용체계(OS), 홈 네트워크 표준의 하나인 ‘애니넷’도 모두 연구소의 피와 땀이 이룬 결실이다.

 연구소에 이에 그치지 않고 포스트PC·DMB·광 저장장치·홈시어터 등 디지털 시대에 대비한 다양한 분야의 미래 선행 기술 확보에 앞장서고 있다. 연구소의 경쟁력은 특허 출원 건수로도 확인된다. 이전에 무턱대고 특허와 라이선스를 취득했지만 지금은 불요불급한 기술 특허만 출원하는 데도 한 달 평균 60건의 새로운 특허가 쏟아진다. 1년이면 약 700건의 새로운 기술이 연구소에서 탄생하는 셈이다.

 DM연구소의 2005년 목표는 ‘기술 리더십’ 확보다. 이어 2006년 이후에는 ‘월드 베스트 R&D 센터’로 자리매김한다는 방침이다. 24시간 연구소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것은 이런 명확한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박노병 DM연구소장

 “기술이 결국 경쟁력입니다.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마케팅은 사상누각입니다. 최고의 기술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지금의 DM연구소를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 박노명 연구소장은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가 도래할수록 오히려 선행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DM연구소는 디스플레이에서 플랫폼·스토리지·네트워크·소프트웨어까지 모두 망라하는 종합 기술 집합소다. 이 중에 한 분야만 어긋나도 전체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면 각 분야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면 상당한 시너지를 올릴 수 있다. 박 소장은 “각 팀의 고유 권한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최고의 기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춰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며 “DM연구소가 ‘월드 퍼스트, 월드 베스트’ 상품을 만드는 중추 역할을 맡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LG전자 디지털디스플레이 연구소

 LG전자 디지털디스플레이(DD) 연구소의 최우선 연구 과제는 ‘PDP’다. 최근 LCD와 가격, 화면 사이즈를 놓고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연구소는 ‘세계 최초·최고 제품’ 개발을 위해 밤낮이 따로 없다. LG전자의 디스플레이 R&D를 모두 책임지고 있는 이곳의 연구 성과가 바로 LG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나 다름없다. 이 때문인지 연구소 안의 분위기는 겉모습과 딴판이다. 그저 조용한 사무실처럼 보이지만 연구원 개개인의 눈빛 하나하나에는 비장감마저 감돈다.

 디스플레이 연구소는 서울 우면동 LG전자 기술연구소 맨 중앙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연구소와 함께 DM연구소, 전자기술원, 시스템IC 연구 담당 등이 있는 이곳을 LG전자는 연구소 대신에 ‘우면동 R&D 캠퍼스’라고 부른다. 실제 아담한 대학의 실험실이 떠오르게 한다. 연구원의 복장도 자유롭다. 연구소 안팎의 철저한 보안 검색만 뺀다면 대기업의 연구소라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먼저 개발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기술 경쟁 시대의 맨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의 개발 성과가 바로 바로 시장에서 판가름나 한 치의 여유도 없다. 특히나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디스플레이 분야는 발목을 잡으려는 미국·일본·중국 등 글로벌업체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24시간을 마치 48시간처럼 사용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연구소의 연구 분야는 크게 PDP와 모니터, 프로젝션 디스플레이로 나뉜다. 이 중에서도 역시 가장 큰 관심사는 PDP다. 200여명 연구원 중 절반 이상이 PDP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100인치 제품을 상용화하면서 연구소의 주가를 다시 한 번 드높였다. 내년 초에는 70인치급 프로젝션 TV도 준비중이다.

 “디스플레이 분야는 이미 기업을 넘어 국가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견제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눈에 보이는 특허와 라이선스 확보 경쟁에서 각 기업의 제품 라인업까지 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관심사입니다. 조금만 뒤처져도 바로 세계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죠.”

 유은호 소장은 “디스플레이 연구소의 임무는 가장 먼저, 가장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별다른 벤치마킹 사이트가 없어 오직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게 가장 큰 고충”이라고 덧붙였다.

 LG전자 디스플레이 연구소의 지칠 줄 모르는 원동력은 결국 미래를 앞서 준비하고 세계를 향해 뛰고 있다는 자부심이 아닐까.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유은호 연구소장

 “디스플레이는 지금 PDP와 LCD의 경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시장을 주도하기보다는 분야별로 시장이 세분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각각 방식의 장단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은호 연구소장은 20년 넘게 디스플레이 한 분야만을 고집한 ‘마스터 엔지니어’다.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가 더욱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 속에는 무게감이 실려 있다. 최근 벌어지는 디스플레이 경쟁을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상식 수준의 답변이지만 자신감이 배어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이미 생산은 중국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남은 건 기술뿐 입니다. 연구소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죠. 특히 일본과 중국·대만의 틈바구니에 있는 우리 같은 입장에서는 신기술 확보가 바로 경쟁력으로 이어집니다.”

 유은호 소장은 “기술은 이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원천 소스라는 의미뿐 아니라 원가 경쟁력을 낮출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디스플레이 연구소를 LG전자의 수많은 연구소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세계에 보여 줄 수 있는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