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광장]고갯길 레이싱 마니아 박승세

레이싱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도시를 질주하거나 경기장의 트랙을 도는 것도 있으며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랠리가 있다. 그러나 산의 정상에서 S자 고갯길을 타고 내려오는 레이싱보다 위험하진 않다. 백지 상태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모든 것을 터득하고 국내 고갯길 레이싱의 최정상을 달리고 있는 박숭세씨를 만나 그의 인생을 훔쳐 봤다.

# ‘이니셜 D’를 만나 인생 전환

“제가 차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게 되고 고갯길 레이싱을 즐기된 것은 순전히 게임 때문이었습니다.”

국내 아마추어 고갯길 레이서 중 가장 유명한 박숭세(24세)씨. 프로의 세계에서도 인정해주는 실력을 지니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이력에 대해 묻자 게임 얘기부터 꺼냈다. 자신이 하는 일과 게임을 결코 떼낼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과거에 대해 시동을 걸었다.

박씨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에 빠져 살았다. 그의 친동생과 함께 죽이 맞아 콘솔 게임기와 타이틀을 모조리 구입했고 롤플레잉과 아케이드 게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고. 그러다 PC 온라인 게임에 눈을 떠 ‘울티마 온라인’을 즐기게 됐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온라인 게임에 대한 열정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울티마 온라인’에서 그 어렵다는 ‘에버퀘스트’로 옮긴 상태다. 그렇게 게임에 열중하던 시기에 어느날 친구들과 오락실을 방문하게 됐는데 눈에 띈 것이 바로 전설의 레이싱 게임 ‘이니셜 D’.

“‘이니셜 D’를 처음으로 플레이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사실적이고 재미있는 레이싱 게임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그게 원래는 원작이 만화라는 사실도 전혀 몰랐죠. 그 때부터 매일 오락실에서 살았습니다.”

게임상에서 주행을 완벽하게 터득할 즈음에 원작 만화를 알게 됐고 단 몇 시간만에 약 40권에 이르는 분량을 읽어 버렸다. ‘이니셜 D’에 완전히 빠진 박숭세씨는 ‘과연 현실에서도 이런 주행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면허증을 따고 지도를 구입해 국내에서 고갯길 레이싱을 할 수 있는 지역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발견한 곳이 바로 북악 스카이웨이. 근처에 인가도 없고 인적도 드물고 만화처럼 S자 고갯길이 많아 최적의 조건이었다. 장소를 확보하자, 드디어 어머니 몰래 오토 레간자를 몰고 나와 실험에 착수했다. 그 때가 2002년 12월. 차와 주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것이었다.

#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져

고갯길 레이싱에 재미를 느껴 친구들과 매일 새벽 1시부터 시작해서 동이 틀 때까지 연습하고 낮에 자는 일과가 반복됐다. 실력은 나날이 올라갔고 조금씩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순정 차(튜닝을 하지 않은 일반차)로, 그것도 오토로 산을 타는 미친 괴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박씨와 친구들은 자신들 스스로 ‘싱크로 G’라는 팀명을 달고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북악 스카이웨이로 와 배틀을 합시다”라고 홍보하고 다녔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런 차와 아마추어가 고갯길을 달리냐고 무시했죠. 하지만 연습 시간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직접 시승을 하고 나면 인정해 주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무서워서 기절까지 했다니까요. 하하하….”

그렇게 회원이 저절로 모이기 시작했다. 회원 중 누군가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배포하면서 더욱 유명해졌고 차에 미친 사람들이라면 박숭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그를 인정하고 차량 부품과 각종 유지비를 지원하기에 이르고 있다.

현재 다음카페에 만들어진 싱크로 G(http:cafe.daum.netcarbattle)의 회원은 5000여명. 실제 차를 소유하고 달리는 인원은 약 200명 수준이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40대 치과의사까지 다양하게 있으나 확실히 20대와 B형이 가장 많다고. 모두 순수한 열정과 차에 대한 사랑만으로 뭉쳤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폭주족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 저변 확대가 목표

일산의 여자 친구 집에서 강남역 자신의 집까지 18분에 주파하는 박씨는 요즘 사업에 대한 구상으로 머리가 꽉 차 있다.

“우리 나라는 레이서에 대한 시선이 너무 나쁩니다. 시장도 굉장히 좁은데 그나마 서울과 부산에 집중돼 있어요. 경기장에는 관람석조차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제가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뭐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에요.”

그의 구상은 이렇다. 레이싱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최상의 방법은 게임이고 레이싱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유저에게 직접 차를 타보게 하고 재미를 붙여 주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적 인식도 달라지고 저변 확대도 가능하니 일석이조라는 설명.

이를 위해 레이싱 게임을 만드는 회사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자신의 팀이 해당 레이싱 게임 홍보와 마케팅에도 적극 참여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이를테면 윈-윈 전략인 셈.

“전 정말로 차를 사랑합니다. 하루라도 차을 안 몰면 밤에 잠이 안 와요. 돈도 벌고 미래를 설계해야하는 나이지만 현재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이너스 10의 시력을 가지고 있어 군대도 면제 받았다는 박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앞으로 질주하는 젊은이의 진정한 표상이었다. 그의 건투를 빈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