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컬렉션]세계를 뒤흔든 불멸의 게임(34)로드 러너

‘로드 러너’는 애플2에서 최초로 발매돼 각종 콘솔 게임기와 PC로 이식됐으며 어린 아이부터 수염 기른 아저씨까지 좋아했던 ‘진짜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또 최초로 에디터를 지원해 유저가 게임을 즐기고 자신이 원하는 맵과 레벨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마련한 역사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애플 컴퓨터가 시대의 주류를 이루고 베이직과 기계어로 프로그램을 짜던 시기가 있었다. 80년대 초반에만 해도 애플 컴퓨터는 IBM PC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으며 컴퓨터 학원은 모두 애플 2를 구입해 수강생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는 많은 컴퓨터 게임이 쏟아져 나왔으며 지금보다 훨씬 창조적인 작품들로 유저들을 유혹했다.

이 중에서 브로더번드가 제작한 ‘로드 러너’는 전 세계를 강타하며 신드룸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게임 시장의 가장 큰 무대인 오락실의 슈팅 게임과 아케이드 액션 게임과 확연히 달랐고 점잖은 게임성으로 인해 20대와 30대에게 까지 인기를 누리며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작품이다.1983년에 출시된 ‘로드 러너’는 일종의 퍼즐 게임이다. 유저는 인간 모습을 한 캐릭터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거미줄처럼 복잡한 스테이지에서 탈출구를 찾는다. 2∼3명으로 조직된 로봇 몬스터는 유저를 끈질기게 쫓아오며 스치기만 해도 유저의 숨통을 끊어 버린다.

유저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몬스터보다 약간 빠른 발과 땅을 팔 수 있는 능력이다. 땅을 팔 수 있는 능력은, 몬스터가 유저를 따라 오다가 구멍으로 떨어지게 하거나 통로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구멍이 다시 재생되기 때문에 마음놓고 기다릴 수도 없다.

스테이지의 최상층으로 연결되는 사다리를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 유저는 스테이지에 존재하는 모든 황금을 찾아야 한다. 황금은 땅 위에 놓여 있거나 맵의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뇌 세포를 재빨리 굴려야만 획득할 수 있다. 총 99단계의 스테이지로 이뤄진 이 게임은 유저들 사이에서 누구의 아이큐가 높은가를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로드 러너’는 엄청난 중독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변변한 사운드도 없고 그래픽이라고 해야 겨우 몇 가지 단색으로 이뤄진 복잡한 구조물이 전부다. 캐릭터는 더욱 단순해 인간의 그림자가 이리저리 어색한 동작으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긴장감과 스테이지 클리어의 아쉬움, 머리를 굴려야 하는 퍼즐적 요소는 다시 상기해 봐도 높은 수준인 작품이었다. 높은 인공지능을 지닌 몬스터는 유저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따돌릴 수 없다. 빠른 걸음과 땅을 파는 능력으로 함정을 만들어 유인해도 곧 빠져 나온다. 오로지 유저는 땅을 파고 도망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곳곳에 놓여진 황금을 얻기 위해 머리를 빨리 굴려 순발력을 발휘하는 것이 포인트다. 스테이지의 단계가 하나씩 올라갈수록 난이도도 점점 더 높아져 나중에는 도저히 클리어가 불가능할 것 같은 스테이지도 등장한다. 하지만 해결책은 반드시 존재했고 그 중에는 몬스터를 이용해야 하는 것 조차 있었다. 전혀 폭력적이지 않고 창조적인 게임 플레이를 선보였던 ‘로드 러너’는 발표되자 마자 고전으로 등극하면서 전 세계에 개발사 브로더번드의 이름을 날렸다.브로더번드는 더그 칼스턴에 의해 설립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언어로 ‘형제들의 연합’이라는 뜻을 가진 이 회사는 향후 게임사에 지대한 영향을 줬던 많은 게임을 배출하는데, 당시 게임은 프로그래머 홀로 모든 것을 작업하는 방식이었고 칼스턴도 기획부터 그래픽, 사운드까지 모두 자신이 직접 작업했다.

이 창업자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회사를 만들고 후에 샌 프란시스코로 자리를 옮겨 주옥같은 작품을 출시했다. ‘페르시아의 왕자’, ‘카멘 샌디에고’, ‘미스트’, ‘스타워즈’ 등 세계 게임 유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게임이 브로더번드를 통해 세상의 빛을 봤다.

또 컴퓨터 게임에 교육적 요소를 적극 도입해 타자 연급 게임 ‘마스터 타이프’나 아동용 타이틀 ‘리빙 북스’ 시리즈를 내놓아 에듀테인먼트 장르에서도 많은 인지도를 얻었다. 브로더번드의 이같은 창조적인 게임들은 다음 세대의 게임 개발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게임은 개발자가 구현한 가상 세계의 즐거운 놀이터다. 따라서 유저는 이 곳에서 창조자가 의도한 룰에 따라 즐겁게 뛰어 놀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재밌어도 한계가 분명히 있고 지루함을 느낀 유저는 자신이 재미있게 즐기는 게임을 변형시키길 원하게 된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레벨 에디터다. 현대의 게임들은 에디터 기능을 막강하게 지원해 유저가 원하는 게임 환경을 다채롭게 꾸밀 수 있도록 지원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타크래프트’의 맵 에디터다. 맵 에디터는 블리자드가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요소를 유저가 직접 설계하도록 만들었고 일명 무한 맵으로 불리는 헌터스 맵의 변형인 아이스 헌터도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에디터를 최초로 제공한 게임이 바로 ‘로드 러너’다. 스테이지 에디터를 제공해 유저가 원하는 방식의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지원했고, 이것은 점차 발전해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불세출의 FPS가 등장하는 출발점이 됐다.이 작품의 인기는 무수히 많은 후속작을 낳았다. 1983년 최초의 ‘로드 러너’가 애플2로 등장하고 곧바로 맥킨토시용 버전이 출시됐으며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64, 게임보이 등 대부분의 콘솔 게임기로 이식됐다. 또 1995년에는 온라인 플레이가 가능한 타이틀이 공개됐고 1998년에는 타 개발사에 의해 ‘로드 러너 2’가 정식으로 개발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속작들은 ‘로드 러너’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고 틀에 얽매인 모습만 보여줘 유저의 실망을 샀다. 원작의 우수함을 뛰어 넘지 못하는 후속작들은 많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잊혀져 갔으며 브로더번드 또한 게임 영역에서 탈피해 교육과 출판 등으로 사업의 무게 중심을 옮겼다. 현재 게임사에서 브로더번드는 완전히 제외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1980년대를 풍미한 브로더번드의 게임들은 영원한 빛을 발하며 영예의 전당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올려 놓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