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우습게 보지 마라’
‘스타크래프트’ 게임 리그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5년여 만에 억대 연봉 선수 및 이에 육박하는 선수가 10여 명에 이를 전망이다. 억대 연봉은 일반 샐러리맨에게는 꿈의 연봉. 억대 몸값의 프로게이머는 바로 이 업계에서는 성공의 반열에 오른 것을 뜻한다.
오래전부터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야구와 농구, 축구에서 억대 연봉의 선수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전이다. 아직까지 프로농구를 비롯해 주요 프로스포츠 주전급 1군 선수의 평균 연봉은 1억원에 못 미친다. 이쯤 되면 심심풀이 애들 장난쯤으로 여겼던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오프라인 프로스포츠와 비교해도 훨씬 유망해보이기까지 한다.
# 억! 게임만 잘하면 억대 연봉
e스포츠의 ‘레알 마드리드’로 불리는 KTF매직엔스와 소속 프로게이머들이 닉네임에 어울리게 가장 먼저 스토브리그에 불을 지폈다.
KTF매직엔스는 박정석과 3년간 3억원에 계약할 예정이다. 박정석의 지난해 연봉은 7000만원. 이에따라 박정석은 기존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 강민에 이어 5번째로 프로게이머 억대 연봉클럽에 가입하게 됐다.
또 지난해 각각 4000만원과 3800만원을 받은 변길섭과 조용호, 김정민과도 다년 계약을 추진해 각기 1억5000∼2억원 가량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KTF관계자에 따르면 “주전급 선수는 다년 계약을 원칙으로 최대한 빠른 시간에 재계약을 마무리해 남은 경기에서 심리적인 안정 속에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KTF매직엔스의 선수별 연봉 책정은 곧바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SK텔레콤 T1의 계약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4월이 계약 시점인 SK텔레콤 T1에서 아직까지 재계약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기존 임요환 뿐 아니라 박용욱과 최연성이 연봉 1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받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박용욱의 경우 지난해 최대 8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4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진 최연성은 지난 한해 양대 방송리그 동시 석권 등을 통해 100% 이상의 인상요인을 갖추고 있다.
특히 임요환의 경우 연봉 2억원으로 공식화된 이윤열과 달리 이보다 적은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선으로 알려져 있기에 황제에 대한 대우는 이번 스토브 리그의 최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임요환 역시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윤열보다 못한게 없다는 판단 아래 마지막으로 카드로 내세울 수 있는 아이옵스스타리그 성적에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모습이다.
# KTF 박정석과 SKT 최연성 억대 연봉 초읽기
현재 억대 연봉 선수는 이윤열, 임요환, 홍진호, 강민 등 4명에 불과하다. 곧바로 박정석이 억대 계열에 포함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박용욱, 최연성, 변길섭, 조용호 등이 1억원에 육박하는 연봉과 부수입으로 억대 선수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고 대우를 받는 일부 선수에 한정된 내용이지만 28세 기준 대기업 신입사원 평균 연봉 2500만원, 프로농구 1군 선수 평균 연봉 8000만원 등과 비교할 때 놀라운 액수가 아닐 수 없다. ‘공부 안하고 게임만 좋아했다가는 쪽박차기 십상’이라는 말은 이제 정말 구닥다리 어르신들의 기우가 돼버렸다.
올해 프로게이머 연봉 상승의 주역은 단연 SK텔레콤 T1의 최연성과 KTF매직엔스의 박정석이다.
최연성은 지난해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한해에 온게임넷과 MBC게임 양대 개인리그를 동시 석권했다. SK텔레콤 T1 주훈 감독은 “선수 계약 문제는 아직까지 나온 얘기가 없고 구단 측으로부터 통보받은 바도 없지만 최연성이 개인리그에서 빼어난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팀 내에서 가장 높은 인상 요인을 갖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정석의 경우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토스 1인자다. 꾸준하고 흔들림 없는 성적으로 지난 시즌 초중반 KTF매직엔스의 전반적인 성적 부진을 상당부분 홀로 커버한 공로가 인정된다. 비슷한 레벨의 홍진호, 강민이 1억원을 넘게 받고 있다는 점에서 성적 이외의 요건도 충분하다. 구단 측도 박정석에 대한 대우를 어느 선수보다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 프로게이머 청소년 유망직종 안착
이와 함께 일반 샐러리맨과 비슷한 연봉 2000만원 이상을 받는 선수도 지난해에 비해 두배 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이쯤 되면 게임 하나만 잘하면 먹고 사는데 크게 지장없는 시대가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KTF매직엔스와 SK텔레콤 T1에서 억대 연봉 선수를 제외한 주전급 선수들은 최소 20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 여름이 계약 시점인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에서는 이윤열과 이병민을 제외한 몇몇 주전이 기존 1200만원에서 성적 여하에 따라 2000만원 이상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연봉 2000만원 이상 선수는 억대 연봉자를 포함해 이고시스POS의 간판 박성준과 한빛스타즈의 나도현, 헥사트론드림의 장진남 등 20여명에 이른다.
스카이 프로리그 3라운드 머큐리리그 우승에 이어 3라운드 챔피언, 그리고 대망의 그랜드 파이널 우승까지 바라보고 있는 KTF매직엔스의 경우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은 선수의 사기를 높여 우승을 유도해내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기량을 되찾았지만 KTF매직엔스는 한동안 개인전이나 팀 리그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SK텔레콤도 비슷하다. 개인 리그에서 최연성이 두각을 나타낸 것 말고 팀이 내세울 게 없다.
다행히 국내 e스포츠를 대표하는 명문팀 스폰서들이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지원 확대를 통해 e스포츠를 대중화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성적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소속 팀과 프로게이머에 대한 육성 차원에서 대우를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나간다는 뜻이다. 억대 연봉 선수의 확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몇몇 기업은 고액 연봉뿐 아니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팀 운영을 통해 장기적인 기업 이미지 확대를 꾀하는 중이다.
빈익빈 부익부와 프로게이머 자질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억대 연봉 선수의 등장 및 확대, 그리고 스폰서로서 대기업 참여 및 육성 지원 방향은 그동안 재주꾼 정도로 취급받던 프로게이머가 명실공히 촉망받는 새로운 전문직업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국내 프로야구와 축구의 최고액 연봉 선수, 아니 미국 메이저리그나 NFL, NBA, 유럽 프로축구 리그 등에서 활약하는 유명 선수와 비교할 수 없지만 국내 e스포츠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수치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임동식 임동식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