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업무보고. 피할 수 없는 각 부처의 연례 행사다. 보고를 앞둔 장관들은 초긴장 상태다. 모르긴 해도 수험생 기분 못지않을 게다. 대통령 업무보고는 부처에 대한 평가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3일 시작하는 올해 업무보고는 예년과 다른 점이 많다. 부처마다 성과지표를 제시해야 한다. 성과지표는 수치로 나타내야 한다. 일종의 자가 진단인 셈인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평가자가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 수치를 내놔야 한다. 또 다른 점은 각 부처가 업무보고 전에 주요 내용을 청와대에 서면 보고토록 한 것이다. 이는 부처 간 사전조율을 통해 업무의 혼선을 막기 위함이다. 이러니 업무를 보고해야 할 25개 부처마다 고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변화는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한 것이니 힘들어도 넘어야 할 산이다.
부처 장관들이 나름대로 각자 열심히 정책을 집행했으니 대통령한테 칭찬이나 격려를 받아야 할 것이다. 만의 하나 대통령한테 질책이나 지적을 받기라도 하면 장관의 체면은 말이 아닐 것이다. 장관이 조직을 통솔하는 데 말발이 서지 않을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부처마다 사전에 리허설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옛말에도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를 국민이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올해 정부 정책의 목표와 실천구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미래를 알 수 있다. 그동안 참여정부는 국가균형발전과 동반성장을 강조해 왔다. 연초에는 경제살리기에 다걸기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벤처활성화, 중소기업육성, 부품·소재산업 육성, 과학기술 육성, 성장동력 발굴 육성, IT 839 전략 등을 제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취임 2주년 연설에서 ‘선진 한국 건설’을 강조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각 부처의 구체적인 이행과제가 이번 대통령 업무보고시 제시될 것이다.
과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었다. 백화점 상품처럼 나열식 또는 점수따기 정책 제시 등으로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지 않았다. 대통령 앞에서 예전 것을 시치미 떼고 한약 달이듯이 재탕 삼탕하거나 현실성이 없는 정책을 부풀려 제시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것은 행정의 낭비이며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부처별로 정책목표와 함께 구체적 실천과제를 선정, 보고토록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장관들은 대통령 업무보고시 시대 흐름을 적절하게 정책에 반영하되 점수따기식이나 반짝 정책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이미 추진중인 정책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실천 계획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만약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새로운 사업계획을 제시할 경우 이전 사업들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정책이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다. 특히 기술 개발이나 산업 연관 정책은 장기정책을 펴야 이룰 수 있다. 예산확보도 중요한 문제다. 예산 없이 대통령 앞에서 이런 일 하겠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군사 없이 전쟁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산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공약뿐이다. 지난해 말 과기부총리제 도입으로 미시경제를 과기부총리가 총괄하게 된만큼 범정부적인 R&D 조정과 함께 과학기술·산업·인력 등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도 주요 관심사다.
지난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현직 정치인이 이런 말을 했다. “장관들이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 대통령의 관심사항은 수시로 바뀐다. 장관들이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정책을 추진하면 성과를 거둘 게 거의 없다.” 실제 장관들의 재임 기간은 평균 1년 남짓하다. 각 부처의 정책은 지속성과 현장성을 갖추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 뿌리내릴 수 있다. 각 부처의 보고내용은 우리의 미래상이다. 국민에게 꿈을 주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내용이 담긴 업무보고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