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정형문 에이템포 亞총괄 사장(2)

(2) 흙탕물 투성이 영업사원

일반적으로 알려진 ‘나에 대한 정보’가 그렇듯 내 IT 이력의 대부분은 EMC다. 지사 설립 전부터 맺게 된 인연은 지사 설립 이후 최근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로 이어졌다. 비록 직장을 많이 옮기는 큰 변화는 없었지만 10년 넘게 다국적 기업 지사장으로 있으며 ‘위기’를 겪었고, 그 때마다 나름대로 우리 시장에서 EMC의 위상을 다르게 하고 그로 인해 나 역시 함께 변화되는 큰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1987년 코리아에이컴에서 EMC 제품 영업을 처음 시작할 때다. 그해 7월 중순, 석양이 곱게 물든 날 창원에 도착했다. 눕기만 하면 허리가 땅에 닿을 듯 휘는 스프링 침대 탓에 잠자리가 불편해서 눈을 뜬 게 새벽 4시경.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1980년대에 한반도에 가장 큰 피해를 남겼다는 태풍 셀마가 지나가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았다. 태풍은 극에 달해 있었다. 무서워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을 정도로 강한 바람, 부러진 가로수, 길 위를 굴러 다니는 간판들, 쓰레기. 문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오전 10시에 A 중공업, 오후 2시에 B 중공업을 방문하는 게 그날의 일정이었고, 14박 15일의 경상도 지역 순회 출장을 마감하는 날이기도 했다. 대안이 없었다. 여관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구한 비닐 비료포대에 영업자료가 담긴 가방을 담아 들고 넥타이를 매고 무조건 길을 나섰다.

눈도 못뜰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주기적으로 몇 초 정도만 쉬면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폭우가 몇 분씩 쏟아져 내렸다. 서너 시간 만에 겨우 A 중공업 정문에 도착했다. 물에 빠진 생쥐는 차라리 깨끗하기나 하지, 온 몸은 흙탕물 범벅이었고, 지칠 대로 지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몸은 이미 파김치가 돼있었으나, 최대한 의관을 다듬고 나서 전산실로 들어섰다.

지친 눈에도 이건 사무실이 아니었다. 모두들 일손을 놓고 일어서서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며 웅성대고 있었다.

“전산실장님과 약속이 있어서 왔는데요” “누구신데요?” 놀란 토끼 눈을 한 여직원이 물었다. “예, 서울에서 온 코리아에이컴 영업사원 정형문입니다.”

그때 직감적으로 저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내게 다가와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예, 서울에서….” “아니 내 말은 어떻게 이 날씨에 여기까지 왔느냐는 겁니다” “걸어서 왔습니다.”

“차나 한 잔 하고 가라”는 그의 말에는 전혀 영업적인 내용은 들을 자세가 아니었다. 듣는 둥 마는 둥하는 고객에게 20여분 만에 프리젠테이션을 끝냈다. 몇 가지 통상적인 질문이 이어졌지만 도무지 진지함은 발견할 수 없었고, 다만 이런 악천후에 나타난 이 녀석은 누군가 하는 호기심이 전부인 듯 했다.

‘날씨가 여러모로 힘들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풀이 죽어 일어섰다. B중공업과 2시에 약속이 있어서 일어서야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시내 중심지에 있던 B중공업에서 만난 건 ‘임시휴업’이라고 쓰여진 정문 앞 삼각대 뿐이었다.

2주 후, A중공업 전산실장 C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2시간 정도의 상담 후 그 실장은 입장을 전달해왔다. “EMC 가 무슨 회산지, 그 제품이 뭔지도 몰랐지만, 정 과장의 열정을 보고 일단 조건부 구매를 하려 합니다. 1달 동안 테스트를 해보되, 경쟁사 제품보다 빠르고, 값싸고, 종신워런티(lifetime warranty)를 제공해준다면….”

1988년 초, 우리나라 기업에 최초로 EMC 제품이 설치됐다. 1987년에 국내 총판 계약을 맺은 이후로 1년 만의 일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불의의 기상 재난이 가져다 준 행운이랄까. 고객감동은 영업의 첩경이며 진정한 고객 감동은 입이 아닌 발과 두 귀와 열정으로 이뤄지는 것임을 경험한 것이다.

hayward.jeong@atempo.com

사진: 지난 1987년 당시 코리아이에컴 직원들과 함께 한 야유회. 중앙에 조끼를 입은 사람이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