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 킨제이 보고서

섹스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그것이 종족 보존이라는 인간 생존요건의 기본적 역할 이외에도 인간 육체로 경험할 수 있는 극대치의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장 사적이며 개인적인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섹스에 대한 호기심도 증폭된다. 하지만 섹스는 그것이 갖고 있는 커다란 파괴력 때문에 오랫동안 금기의 영역 속에 갇혀 있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공개된 방법으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금기의 장막을 하나씩 거두어간다는 뜻이기 때문에 기존 체제가 용납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1948년, 이른바 ‘킨제이 보고서’라고 불리는 ‘인간에 있어서의 남성의 성행위’가 나왔을 때 사회 전체가 받은 충격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빌 콘돈 감독은 말벌을 연구하던 동물학자 킨제이 박사가 왜, 어떻게 해서, 섹스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는지 전기적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인디애나 대학 생물학과 교수였던 킨제이 박사는 ‘결혼강좌’라는 부부의 성행위를 다룬 강좌를 맡게 되면서 인간의 섹스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의 섹스에 대한 임상 연구가 전무한 상태에서 그가 시도한 방법은 인터뷰였다. 다양한 연령, 계층, 인종, 직업군을 포함하고 있는 성인남녀 1만2000명을 상대로 킨제이 박사는 그들의 섹스 라이프에 대한 깊숙한 심층 인터뷰를 시도하고 그것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해서 리포트를 출간했다. 그것이 킨제이 보고서다.

‘킨제이 보고서’는 발간 몇달만에 20만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떠올랐고 수많은 방송 신문 잡지에 소개되었으며 그는 국제적 명사의 반열에 올라선다. 그러나 킨제이 박사가 5년 뒤 출간한 ‘인간에 있어서의 여성의 성행위’는 보수적인 미국 사회의 거친 공격을 받는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록펠러 재단의 지원금도 끊기고 청문회까지 개최된다. 킨제이 박사는 말년을 그렇게 사회의 거친 공격에 저항하며 보냈다.

빌 콘돈 감독은 리암 니슨을 킨제이 박사 역에 캐스팅하고 그의 제자였다가 그와 결혼한 부인 역에 로라 리니를 캐스팅하였다. 리암 니슨은 생전의 킨제이 박사와 흡사한 외모를 바탕으로 그의 제스처와 말투까지도 완벽하게 재현하면서 그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 영화는 섹스 그 자체에 대한 말초적 접근이 아니라, 킨제이 박사의 일대기를 위트 있게 그려가면서 왜 그가 섹스 연구를 시작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의 개인사적 흔적을 더듬어가는 과정에서, 엄격한 목사 가정에서 성장한 그가 결혼 후 동성애에 빠져드는 모습까지도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킨제이 박사가 시도한 인터뷰 방법으로 킨제이 박사를 인터뷰하는 방식을 통해 그의 개인사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속도감 있는 전개, 위트 있는 상황 묘사보다 더 뛰어난 것은 각본이다. 빌 콘돈 감독은 ‘시카고’로 아카데미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갓 앤 몬스터’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저력을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자칫 딱딱하게 학술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아니면 스캔들 위주의 말초적 관심에 그칠 수도 있었지만 섹스에 대한 진지한 학술적 접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유머 감각으로 다뤄진 것은 전적으로 각본의 힘에 있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